김종대 칼럼
한강의 기적은 회복탄력성으로 완성된다
많은 문명, 국가 및 사회의 끝없는 멸망과 탄생의 반복으로 인류 역사는 진화해왔다. 그 과정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가지고 오랫동안 생존과 발전을 이룬 사례도 있지만 단기간에 멸망한 경우도 많다.
올해 5월 영국 본머스대학의 리리스(Riris) 교수 등이 발표한 논문 ‘빈번한 동요가 과거 인류의 회복탄력성을 향상시켰다’는 3만년 동안의 전쟁 기근 기후변화 등에 관한 고고학 자료를 이용해 전세계 16개 지역의 회복탄력성의 차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방사능 탄소 14 추적 기법을 이용하면 인구 규모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데 인구가 많을수록 식량, 땔감 및 쓰레기가 많아지므로 연도 추정을 통해 문명의 부침을 추측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전 연구와 마찬가지로 인류사의 문명의 멸망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으며 농업과 목축업에 기반을 둔 문명이 기후변화에 더 민감하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또한 흥미롭게도 어떤 사회가 침체(downturn)를 자주 겪을수록 미래의 충격에서 빨리 회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잦은 시련을 겪은 사회가 더 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지게 되므로 시련으로부터 고통을 적게 겪고 빨리 회복한다는 것이다.
자료 분석 결과 잦은 시련으로 인해 회복력이 향상된 대표적 사례로 중국의 중원 및 카리브해 지역과 함께 한반도를 꼽고 있다. 잦은 동요(disturbance)를 겪은 숲 생태계의 회복력이 높듯이 문명도 경험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미래세대에 가르쳐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시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형성되거나 창출한 혁신, 즉 기술 관행 행동 노하우 또는 전통 등이 회복탄력성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내려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의식 계승돼 회복탄력성 표출
이 연구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적절하면서도 통렬하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정치 사회 문화 전문지인 디플로맷(The Diplomat)은 윤석열정권의 계엄선포에 이은 국회 의결에 의한 해제는 과거 독재정권과 계엄령의 혹독한 공포가 국민들 마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가능했다고 분석하면서 한국 사회가 놀라울 정도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45년 전 계엄을 선언한 군사독재정권의 경험 이후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놀라울 만한 민주역량을 쌓아 온 한국 사회가 내적 혼란으로부터 즉시 회복할 수 있는 구조와 원칙을 내재화시켜왔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경제적 번영을 이룬 한강의 기적보다도 훨씬 어렵다고 평가되는 민주주의 기적을 짧은 시간에 이루어 낸 한국이 그에 대한 도전을 바로 이겨내고 다시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내적 역량을 전세계에 보여준 쾌거였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가 현재 치르고 있는 사회적 비용은 헛되지 않은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일부 외신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이 아직 불확실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이번 12.3 내란사태와 그 이후의 윤 대통령 국회 탄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수습과정은 직접 독재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로 이어지는 민주주의 의식과 사회적 문화적 성숙도가 세대를 아우르는 유산으로 계승되어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보여준 회복탄력성은 향후로도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겠지만 진정한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윤석열정권의 12.3 내란사태는 내부로부터의 도전이었지만 더 심각한 도전은 외부에서 오고 있으며 그로부터 회복은 더욱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리리스 교수 등의 연구에서도 인류 역사의 부침에서 회복력을 시험한 가장 심각한 도전은 기후변화였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기후회복력(climate resilience)을 가장 중요한 이슈이자 동시에 목표로 삼고 매진해야 할 이유다.
기후변화 이슈를 단순히 단기적 산업경쟁력 이슈로만 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어리석다. 기후탄력성은 사람과 생태계가 특정 기후 위협으로부터 얼마나 잘 회복할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한국 사회가 더 주목해야 할 기후회복력
한국 사회가 주목하고 앞으로 전세계에 보여 줄 다음 기적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놀라운 회복탄력성 구축과 실현이다. 홍수 가뭄 이상기후 등과 같은 물리적 재난뿐 아니라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위험(transition risk)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퇴보도 기후위협에 포함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진정한 지속가능한 성장의 글로벌 리더가 됨을 의미한다.
회복탄력성은 보다 체계적인 접근방법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며 내외부 변화를 이용해 보다 효율적인 사회가 되고 변화에 따른 기회를 활용할 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동적인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역량을 갖춘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큰 회복탄력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역설적으로 긴 고난의 역사로부터 한국 사회가 받은 선물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회복탄력성은 기후회복력으로 완성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