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국에…당권·대권 욕심만 앞세우는 국민의힘
내란·탄핵에 대한 진솔한 반성 ‘뒷전’
비대위원장 놓고 중진들 ‘경쟁’ 과열
이재명 2심 겨냥 탄핵재판 지연 전술
국민의힘이 배출한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사태를 저질렀다가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당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진솔한 반성과 사과 대신 당권·대권 욕심만 앞세우고 있다. 분노한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욕심에만 눈이 먼 꼴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당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국민의힘은 18일 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원장 선임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친윤 일각에서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까지 겸직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띄우자, 비윤과 중도의원들이 “겸직은 안 된다. 투톱(비대위원장·원내대표)으로 가야 한다”며 저지에 나선 모양새다.
비대위원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중진의원 중 일부는 “내가 맡겠다”고 나서지 않으면서, 물밑에서는 “내가 적임자”라며 세결집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내란·탄핵 사태로 당의 운명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와중에 5선 중진들은 5~6개월짜리 당권(비대위원장)을 잡으려고 자리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5선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해 권영세 김기현 나경원 의원 등이 거론된다.
윤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면 내년 초중반에는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여권 대선주자로는 한동훈 전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꼽힌다. 이들은 윤 대통령 탄핵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면서 대선 예비경선을 치르는 모양새다. 한 전 대표와 오 시장, 안 의원, 유 전 의원은 탄핵에 찬성했지만, 홍 시장과 원 전 장관은 반대했다.
일부 대선주자는 벌써부터 조기 대선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도 엿보인다. 내란·탄핵 사태를 전후해 정치권 인사나 시사평론가 등을 두루 접촉하며 자신의 대권 행보를 탐문한다는 후문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벌써부터 “누가 경쟁력 있나” “누가 대선주자로 유력한가”를 따지며 줄대기에 분주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내란·탄핵 사태로 인해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연 여당은 이에 책임을 지는 대신 “대선에서 어떻게든 이겨 재집권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다. 대선을 이기기 위해 탄핵 재판 지연에 총력태세다. 탄핵 재판을 지연시키면 대선 일정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대선이 치러지기 전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항소심 선고가 나오면 대선에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18일 “탄핵 정당 낙인 때문에 대선에 불리한 게 사실이지만, 이 대표가 2심에서 중형이 받는다면 (대선을) 해볼 만하지 않겠냐는 게 대부분 의원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이 내란·탄핵 사태 와중에 당권·대권 욕심만 앞세우는 모습은 민심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탄핵 표결(14일)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한국갤럽, 10~12일, 전화면접, 95%신뢰수준 오차범위 ±3.1%p,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24%까지 떨어졌다. 내란 사태 직전에는 32%였다.
익명을 요구한 시사평론가는 18일 “국민의힘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도 부족할 판에 중진들은 당권 경쟁 벌이고, 당은 재집권하겠다고 나대면 정말 궤멸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민심이 요구하는 탄핵에도 절대다수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냐. 이대로 가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