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사’ 시험대 오른 공수처
윤 대통령 사건 이첩 … 고질적 인력난에 수사력 부족 우려
2차 소환 나설듯 … 대통령실 압수수색은 경호처에 또 막혀
검찰이 12.3 내란사태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첩하면서 공수처가 시험대에 올랐다. 고질적인 인력난으로 수사력을 의심받아온 공수처가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비상계엄TF(팀장 이대환 수사3부장검사)는 이날부터 대검찰청으로부터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사건 기록을 넘겨받아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윤 대통령이 출석 요구 불응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중복수사 문제가 해소된 만큼 윤 대통령의 대한 재소환 통보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출석 거부 명분 사라져 = 앞서 공수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국방부 조사본부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는 18일 오전 10시 공수처에 나와 조사받을 것을 통보했으나 윤 대통령은 출석요구서 수령 자체를 거부한 바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아직 재소환 통보 시점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윤 대통령 사건이 공수처에 이첩된 만큼 빠르게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는 전날 긴급 회동을 갖고 검찰이 윤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는 대신 공수처는 나머지 피의자들에 대한 이첩 요구를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군검찰이 합류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공조수사본부가 동시에 수사를 진행하면서 중복수사 우려가 제기돼왔던 데다 공수처의 이첩 요청에도 검찰이 계속 수사할 경우 적법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법에선 공수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이번 내란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 수사는 공수처, 군 수사는 검찰, 경찰 지휘부 수사는 경찰이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됐다.
공수처로서는 내란 사태의 우두머리인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게 됐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공수처가 수사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탓이다.
실제 공수처는 그동안 5번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단 한 건도 발부받지 못했다. 공수처가 직접 기소해 유죄가 확정된 사건도 없다. 이른바 ‘고발사주’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장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최근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바 있다.
당장 수사 인력부터 크게 부족하다. 공수처는 검사 15명과 수사관 36명 등 공수처 인력 전원을 투입할 방침이지만 100여명 규모인 특수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검찰과 경찰로부터 파견받아 수사인력을 보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2~3명의 수사관을 파견한 데 이어 조만간 30~40명의 인원을 추가 파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호 ‘비화폰’ 서버 확보 실패 =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조본은 18일 대통령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대통령경호처의 비협조로 결국 실패했다.
공조수사본부는 이날 오후 4시 50분쯤 경호처로부터 ‘압수수색 불승낙 사유서’를 전달받았다.
경호처는 “군사상 기밀, 공무상 등 이유로 서버 압수수색영장에 협조할 수 없다”고 사유를 밝혔다. 형사소송법상 해당 장소에서는 책임자 승낙 없이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
공조수사본부는 이를 사실상 압수수색 거부 의사로 보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은 경호처 서버에 저장된 조지호 경찰청장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를 목적으로 발부됐다. 조 청장은 계엄 당일 비화폰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6차례 통화했다.
비화폰은 도감청·통화녹음 방지 프로그램이 깔린 보안 휴대전화다. 비화폰은 경호처가 지급·관리하고 있으며 통화 기록 등이 서버에 저장돼 있어 내란 수사의 핵심 단서로 여겨진다.
공조수사본부는 전날에도 대통령실 청사 내에 있는 경호처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경호처와 7시간여 대치 끝에 “협조 여부를 내일(18일) 알려주겠다”는 답을 듣고 철수했다.
공조수사본부는 앞서 지난 11일에도 대통령실 내 국무회의실, 경호처, 101경비단, 합참 지하에 있는 통제지휘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호처가 같은 이유로 청사 진입을 막아 공조수사본부는 일부 자료만을 임의제출 방식으로 넘겨받았다.
공조수사본부는 압수수색영장 집행 기간이 남아있는 만큼 향후 자료 확보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내란 기획’ 혐의 노상원 구속 = 한편 경찰은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18일 구속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정보사령관을 지낸 노씨는 민간인 신분으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도와 이번 계엄을 기획한 ‘비선’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신영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내란실행 혐의를 받는 노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신 부장판사는 영장 발부 사유로 “증거 인멸과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노씨와 변호인이 불출석하면서 열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 제출한 수사 기록과 증거 자료 등을 토대로 신병 확보의 필요성을 판단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노씨가 지난 1일 경기도 한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서 문상호 정보사령관, 정보사 대령 2명과 만나 계엄을 사전 모의한 정황이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들이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폐쇄회로(CC)TV 영상도 확보했다.
노씨와 만났던 A 대령은 최근 경찰 조사에서 노 전 사령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서버 확보와 관련한 인원을 선발했는지 묻자 문 사령관이 “예”라고 답변했다는 내용 등 당시 구체적 상황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의 구속영장에 계엄 당시 정보사령부 산하 첩보부대인 북파공작원부대(HID)를 운용하려던 정황에 대해서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가 장군 인사에도 개입하면서 인적 영향력 행사를 빌미로 계엄 관련 주요 인원을 포섭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히 노씨는 계엄 당일 전후 김 전 장관과 만나거나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 사태 이후에는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경찰은 김 전 장관의 육군사관학교 후배이자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노 전 사령관이 포고령 초안을 작성한 게 아닌지도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와 계엄을 사전 모의한 것으로 의심받는 문 사령관도 같은 날 공수처에 체포됐다. 그는 계엄 당시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 투입을 지시하고 HID를 국회의원 체포조에 투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편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인 3일 밤 HID 요원들이 모여 대기했던 경기 성남시 판교 정보사 100여단 사무실에 장갑차와 전차 등을 운용하는 육군 제2기갑여단 구삼회 여단장도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구 여단장은 이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수개월 전부터 계엄을 설계한 의혹을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호출로 정보사 사무실에 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과거 근무를 함께한 적이 있는 구 여단장에게 “김 장관이 국방부 태스크포스(TF) 관련 임무를 줄 것이니 정보사 판교 건물로 가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기갑여단 위치는 경기 파주시로 서울 도심과 거리가 약 30km(직선거리 기준)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기갑부대다. 이를 두고 노 전 사령관이나 김 전 장관이 계엄 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확산되거나 정치인 체포 등이 어려울 경우 이를 진압하려는 목적으로 구 여단장을 이용해 장갑차 등 기갑전력까지 투입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구본홍·장세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