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공공도서관
민주화 앞당긴 1만8000점의 기록…‘민주주의자의 길’을 걷다
김근태기념도서관, 민주주의·인권 특화 주제 희귀장서·프로그램 호평 … 2025년 주제 ‘희망은 힘이 세다’·이용자들과 접점 늘리는 데 주력
우원식 국회의장은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가결을 선포하면서 “희망은 힘이 셉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그는 2001년 ‘희망은 힘이 세다’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냈다. 13일 서울 도봉구 공공도서관 김근태기념도서관을 방문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민주주의자로 평생을 살다 간 그를 기려 민주주의와 인권을 특화 주제로 하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기리는 마음을 모아 건립됐다. 그는 1980년대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 투쟁했다. 결국 그는 민주화운동 당시 고문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2011년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그가 남긴 민주주의 정신과 관련 기록들이 바탕이 돼 시작됐다. 이에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도서관과 기록관이 함께 위치한 라키비움으로 운영된다. 라키비움이란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이 하나로 조성된 공간을 의미한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건축 설계 당시부터 이같은 공간 활용을 염두에 뒀다. 도서관 안에 기록관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건물 곳곳에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도서관에는 사서 기록연구사 학예사들이 함께 협력하며 근무한다.
박현숙 김근태기념도서관 관장은 “공공도서관은 민주주의의 산물로 시민혁명을 기반으로 탄생했다”면서 “일반 시민들은 공공도서관을 통해 귀족들만 갖고 있던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근태 선생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을 담는 기관이 공공도서관인 것은, 공공도서관의 탄생 배경을 볼 때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통해 기록에 대한 접근성 높여 =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소장한 기록들은 1만8000여점에 이르며 ‘기억곳’에서 김근태의 기록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층 ‘김근태 선생이 걸어온 길’ △2층 ‘정치 민주화의 길’ △3층 ‘따뜻한 사람 김근태’로 구성돼 있다. 3층에서는 ‘문학청년 김근태’ 상설전시를 함께 진행한다. 김근태의 옥중편지 친필문구를 비롯해 관련 책 영상 그림 소식지 등 다양한 기록을 만날 수 있다.
그가 1980년대 고문을 당한 내용을 아내이자 동지였던 인재근 전 의원에게 말한 녹음테이프도 전시돼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인권 유린이 전세계에 알려졌고 민주화가 앞당겨졌다. 김근태가 수감 중이던 시절, 아내에게 쓴 편지와 황석영 등 문화예술인과의 교류가 담긴 신문기사, 고문으로 쇠약해져 긴 글을 읽기 힘들던 그가 즐겨 읽던 시집 등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부부 사이에부터 민주주의와 평등을 추구한 인간 김근태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기록을 누구나 만지고 넘겨볼 수 있도록 원본이 아닌 복제품을 전시해두고 있다. 다만, 1987년 부부가 함께 수상한 케네디 인권상 흉상만큼은 진품이다.
이곳은 성인들은 물론 어린이들이 학급 단위로 방문해 관람하곤 한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도슨트를 양성해 해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박 관장은 “김근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어린이들이 ‘우와, 서울대 나왔어요?’ ‘왜 시위했어요?’ 등을 질문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알아간다”면서 “당시 민주화운동을 했던 시민들의 일상이 적힌 기록들, 연대의 기록들이 민주주의 역사가 됐다”고 말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기록들은 디지털화해 보존하고 온라인을 통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1만1000여점의 기록들을 디지털화해 도서관 누리집을 통해 원문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주제별로 기록을 묶어 해설과 함께 제공한다.
이외에도 김근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구술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누리집과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박 관장은 “기록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이주의 기록’ 등을 공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구술 채록의 경우, 김근태 선생이 노동운동 하던 당시 만났던 수요모임 노동자들이 함께 했고 그가 대학생 시절 수배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할 때 우편으로 과제를 제출하면 학점을 준 고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참여하는 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예술로 기억하는 민주주의 = 김근태기념도서관은 특화 주제인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도서의 비중이 40%에 달한다. 또한 민주주의에 관한 희귀서적들도 만날 수 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조성될 때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단체들은 민주주의 인권 노동 평화에 관련된 도서들을 기증해줬다. 이에 도서관은 ‘근태생각곳’이라 이름을 붙인 공간을 조성해 이 도서들을 비치하고 있다.
김근태의 어록들을 살려 도서분류에 활용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도서관 도서들은 총류 분야에서부터 역사 분야까지 나눠서 비치돼 있다. 각 분류마다 김근태의 어록을 선별해 서가에 적어두고 있다. 또한 책 표지에도 청구기호와 함께 적어 뒀다. 이용자들이 책을 꺼내 고르고 표지를 살피며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는 △총류 ‘대화할 수 있는 용기’ △철학 ‘도덕적 가치’ △종교 ‘따뜻한 손길’ △사회과학 ‘민주주의의 꿈’ △자연과학 ‘자연의 순수와 원리’ △기술과학 ‘내일을 설계하는 기술’ △예술 ‘미래를 위한 상상력’ △언어 ‘평화가 밥이다’ △문학 ‘희망은 힘이 세다’ △역사 ‘정직은 미래를 낳는다’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도서관 곳곳에는 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정기적으로 민주주의 인권 기획전시를 여는데 이번 주제는 ‘예술로 기억하다’이다. 시대의 아픔을 그린 박건웅 유승하 이희재 최호철 작가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접근은 더 쉽게, 내용은 더 깊게” =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민주주의자의 길’은 그중 하나다. 도봉구를 포함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4.19혁명 기념관, 근현대사기념관 등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현장들을 해설사와 함께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민주야, 같이 걷자’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를 위한 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해 9명의 해설사들을 배출했다.
민주주의 아카데미도 운영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중 해마다 주제를 선정해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 2022년엔 ‘경청’, 2023년엔 ‘용기와 실천’, 2024년엔 ‘존중’을 주제로 교육했다. 2024년의 경우, ‘당신은 존중받고 있나요’를 제목으로 박찬관 시청각장애 첼리스트, 권용덕 특수교사 등이 공연과 강연을 선보였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상의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2025년 주제는 김근태의 말 ‘희망은 힘이 세다’로 결정하고 관련 주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박 관장은 “민주주의자의 길은 도서관이 주력하는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해설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새롭게 느낄 수 있다는 반응이 많다”면서 “어린이들은 학급 단위로 참가해 영상과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데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이어 “시청각장애나 발달장애 등을 가까이서 접하면서 좀 더 폭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근태기념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문턱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여 보다 많은 시민들이 도서관을 즐길 수 있기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느끼기를 바란다. 옥상을 개방해 재즈 공연을 열고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 ‘마을의 곳간, 도서관으로 놀러 오세요’ 등을 여는 이유다.
박 관장은 “접근은 더 쉽게 하고 내용은 더 깊게 하는 방향으로 도서관을 경영하고자 한다”면서 “민주주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주민들이 책을 읽으러, 쉬러 들렀다가 프로그램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취지로 최근 이용자와 접점을 많이 늘리고자 노력했고 젊은층 이용자들이 많이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