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계엄령 사태에서 교훈을 찾는 태국
한국 국민과 의원들 강력 저항 태국은 쿠데타 순응 태도 보여
기고 | 부산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김홍구
한국의 계엄령 사태를 보고 태국 일간지에 ‘태국은 한국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양국 상황을 비교했다. 한국 국민들은 독재정권으로의 회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한 순간에 국회의원들은 신속한 조치를 취했고, 군부와 경찰은 자제력을 보였다. 이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체득한 교훈에 기인했다.
반면에 태국은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쿠데타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군사정부에 합류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일단 지켜보자는 기회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쿠데타 성공을 보장하는 역할을 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쿠데타 군인들을 칭찬하기도 했다.
태국은 쿠데타나 계엄령에 순응하는 태도를 자주 보여왔다. 태국에서 1932년 입헌혁명 이후 지금까지 22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나 국회의원들이 군에 직접 저항한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순응적 태도는 고유한 정치·사회·문화적 요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태국은 군부에 대적할 수 있는 정치조직이 취약하다. 잦은 군사쿠데타의 악순환 속에서 의회와 정당정치가 영속성을 갖고 올바로 제도화되지를 못했다. 태국인들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체념이 빠르며 권위에 대한 복종심이 강하다. 이는 상좌부불교의 업(業) 교리의 소산으로 해석되곤 한다. 또 태국인들은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거나 괴롭힘으로써 생겨나는 불필요한 갈등을 극력 회피하며, 직접 불만을 표출하거나 내색하지 않는다.
근래 MZ세대 사이에서 전통적 정치문화가 변화하고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 태국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대세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이후 MZ세대 중심의 민주화 운동도 지속적으로 탄력을 받고 진행되지 못했던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며칠전 국방부행정법안(쿠데타 방지법)이 의회에 제출됐다. 법안은 내각에 장성 임명권을 부여하고, 군인들이 정부의 행정권을 탈취하거나 통제하는 것을 금지시키며, 장교에게는 상관의 불법적인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법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여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여권의 한 유력 정치인은 이 법안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어서 그런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는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결국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슬그머니 철회됐다.
태국이 한국의 계엄령사태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자명하다.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고, 자기희생까지 감수하면서 행동에 나섰나를 자성해보는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