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인텔의 추락이 던지는 교훈

2024-12-23 13:00:03 게재

인텔이 다우지수에서 퇴출되고 대신 엔비디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인텔 인사이드(intel-inside)’ 문구 하나로 PC세계를 주름잡았던 인텔의 추락을 보면서 기업 세계엔 영원한 강자가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다우지수는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0개의 블루칩(우량)기업의 주가총액에 가중치를 매겨 산정한 수치로 매일매일 경제흐름에 관심을 가진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경기지표다. 현재 인텔의 시장가치(주가총액)는 950억달러로 3조5000억달러가 넘는 엔비디아의 약 1/30에 불과하다.

산업 발달의 추세로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인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산업의 총아인데 인텔은 10~20년 전 PC시대의 반도체 왕자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전세계 컴퓨터의 80%가 인텔 반도체를 탑재하지만 반도체 기업 경쟁력 관점에서 본다면 엔비디아는 승자고 인텔은 패자다.

2024년 인텔의 모습은 애처롭다. 총 종업원수의 10%가 넘는 1만5000명을 해고했다. 미국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상징인 인텔을 살려보려고 연방정부 돈을 보조금으로 퍼붓고 있지만 기세꺾인 인텔은 회복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주식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끝내 겔싱어 최고경영자가 퇴출돼 지도력 공백상태에 이르렀다.

자기중심적 순혈주의가 변화 가로막아

한때 반도체하면 인텔을 떠올릴 만큼 독보적 존재였던 기업이 모바일 시대를 거쳐 AI시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추락하는 걸까. 미국의 내로라하는 경영학자들과 월가 전문가들은 그 원인 분석에 분분하다. 요체는 경영능력과 기업문화로 초점이 모아진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인텔의 운명을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흥미를 끌었다. 때는 반도체 왕좌의 지위가 공고했던 2005년 당시 인텔의 최고경영자 폴 오텔리니가 이사회에서 놀라운 아이디어를 냈다. “엔비디어를 사자”는 인수합병(M&A) 제안이었다. 1993년 대만출신 엔지니어 젠슨 황이 창업한 이 벤처기업은 컴퓨터 게임용 그래픽 반도체칩을 만들어내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매수 가격표는 200억달러.

그러나 이사회 반대에 부딪쳐 오텔리니는 엔비디아 매수를 포기했다. 일부 이사들은 그래픽칩(GPU)의 기초디자인이 미래 데이터센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끝내 AI 시스템을 지배할 것이라며 매수에 찬성했지만 반대하는 이사들이 훨씬 더 많았다. 독자 기술개발로 승승장구해온 인텔은 순혈주의 기업문화가 팽배해 사상 최고 비싼 M&A가 될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PC시대를 이끈 실리콘밸리의 쌍두마차였다. 미국의 산업을 동부의 기계공업 및 자동차 중심축에서 실리콘밸리 IT산업축으로 재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이 두 기업이었다. 그래서 인텔의 기업문화에는 자기중심적인 일종의 기술순혈주의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인텔은 2010년 전후의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는데도 실패했다.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할 때 인텔에 반도체를 만들어 공급해줄 것을 제의했으나 인텔 경영진이 기존의 순익구조에 집착하는 바람에 화가 치민 스티브 잡스는 영국의 ARM에 스마트폰칩 디자인을 의뢰했고 나중에는 애플 스스로 칩을 디자인했다. 모바일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스마트폰 앱에 필요한 반도체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팹리스들이 번창하자 압도적 기술로 준비한 대만의 파운드리 TSMC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엔비디아에 선두를 빼앗긴 후 인텔도 AI칩을 개발했지만 후발주자로서 고객 요구를 충족시킬 만큼 뛰어난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미국 바이든정부는 인텔에 정말 호의적이었다. 2021년 지휘봉을 잡은 CEO 팻 겔싱어는 TSMC와 삼성전자의 기세를 보고 인텔을 다시 파운드리(생산)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1000억달러 투자 포부를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내 반도체생산을 늘리겠다며 반도체법을 제정하고 500억달러 지원계획을 발표했을 때 의중에 둔 것은 인텔이었다. 인텔에 돌아갈 지원금은 200억달러다.

미국정부도 바이든에서 트럼프로 바뀌지만 미국정부나 의회는 안보전략과 중국과의 경제전쟁을 위해서도 인텔의 재기를 응원할 것이다. 그러나 전성기 때와는 달라진 반도체산업 환경에서 인텔이 회복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리더의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력 필요

꼭 30년 전 인텔을 찾아간 필자에게 전설적인 CEO 앤디 그로브가 인터뷰 말미에 던진 말이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창밖을 보십시오.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저 빌딩들 창가에는 ‘언제 인텔이 망하나’하고 경쟁자들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통령 등 최고 통치자의 역량이 한 국가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듯 기업의 흥망성쇠도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의 역량에 달려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력과 제때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직관이 중요한 것 같다.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