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대중 동교동 사저 국가유산으로

2024-12-23 13:00:02 게재

지금 세대에겐 공기처럼 당연한 민주주의와 평화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많은 이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1961년부터 지냈던 동교동 사저는 그저 ‘집’이 아니다. 이곳은 민주화 투쟁의 전략이 논의되고 역사적인 결단이 내려졌던 공간이며, 파란만장한 정치 역경 속에서도 고 김 대통령이 지켜왔던 신념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현장이다.

세계 각국도 자국의 지도자 관련 유산을 그대로 보존해 이를 자긍심을 높이는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과 조지 워싱턴의 마운트 버넌 저택, 토머스 제퍼슨의 몬티첼로는 당시 미국의 정치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프랑스 역시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생가를 보존해 독립운동과 국가 재건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이는 지도자 관련 유산이 특정 지역이나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적 유산으로 존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상징적 가치를 품은 동교동 사저 또한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유산이다.

그러나 이 동교동 사저가 지난 7월 개인에게 매각됐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으나 국가유산으로 보존돼야 할 공간이 부동산 물건지로 거래됐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동교동 사저를 지키는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이 마포구가 동교동 사저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이유다.

개인에게 매각된 사저 보존할 방법 모색

마포구는 지난 10월 국가유산청을 찾아 동교동 사저를 임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촉구하고 ‘사저 지키기 챌린지’를 펼쳐 국민적 관심과 공감을 끌어냈다. 이와 함께 여러차례 현재 소유자를 만나 국가유산 등록 동의를 얻었고 지난 11월 마침내 서울시에 동교동 사저의 국가유산 등록신청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사저 보존 추진위원회’도 만들었다. 김대중재단과 유족, 각 분야 전문가와 힘을 합쳐 앞으로 동교동 사저의 국가유산 등록과 보존·활용 방안을 모색할 참이다.

또한 동교동 사저 인근 골목길 234m를 하늘색으로 단장하고 김 대통령의 서체로 명판을 만들어 ‘김대중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포구를 방문하는 수많은 내외국인의 관심이 평화를 상징하는 푸른 길을 따라 동교동 사저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지난 역사에서 돌파구를 찾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는 의미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록되고 보존돼야 한다.

지금에서 조선 시대 500년의 흥망성쇠를 훤히 알 수 있었던 까닭도 25대에 걸친 군주의 통치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온전히 보존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유산이 정치적 이념이나 견해, 시대적 기준에 따라 보존 가치가 매겨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미래 세대에 남겨줄 수 있을까.

마포구가 기울인 노력 평가는 후세 몫

미래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미리 보호하고 가꾸는 것처럼 그들이 기억하고 배워야 할 시대 유산은 현재의 우리가 지켜야 한다. 역사는 우리의 정치적 이념이나 견해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보존해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평가는 오롯이 후세의 몫이다. 동교동 사저에 담긴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마포구가 기울인 노력 역시 훗날 역사에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박강수 미포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