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경제정책방향 … 경제팀 ‘대외신인도 유지’ 총력전
내란사태·트럼프행정부 출범 탓 성장률 2%도 어려울 듯
트럼프정책 대응·산업역량 강화·민생안정 정책 등 담는다
경제정책만으론 시장설득 한계 “정치 불확실성 해소돼야”
정부가 연말쯤 내년도 경제정책방향(경방)을 발표한다. 내란사태와 트럼프 행정부 출범예고로 기로에 선 ‘대외신인도 유지’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트럼프정책 대응방안을 비롯해 산업역량 강화·민생안정 정책 등이 담긴다.
하지만 내란사태가 아직 진화되지 않아 ‘시한부 대책’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 새 정부가 들어서면 없던 일이 될 수 있어서다.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중심으로 위기 대응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 이유다.
◆기재부 막바지 작업 =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경방 초안을 마련한 뒤 막바지 작업 중이다. 발표 시점은 연말쯤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확고한 대외신인도 유지 △통상환경 불확실성 대응 △튼튼한 산업체질 역량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 강화 등 4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경방 청사진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계엄사태 직후 한 때 경방 발표 시점이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견고하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라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방의 최우선 과제는 대외신인도 관리다. 외국인 투자자 인센티브 강화를 비롯해 범정부 옴부즈만 태스크포스(TF) 가동, 외환·증권시장 거래 인프라 개선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환율시장이 요동치자 정부는 이미 지난 20일 선물환 포지션 한도 상향 등을 담은 외환수급 개선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통상환경 불확실성이 커진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도 비중있게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산업 경쟁력을 위한 금융·세제 지원, 중장기 원전 로드맵 등을 준비 중이다. 내수 진작을 위한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공제율 상향과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어든 건설 부문 관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공사비 안정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실효성 있을까 = 문제는 실효성이다. 정부가 올해 제출한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주주환원 촉진 세제와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인하,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 등의 법안은 아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내년 초 새 정부가 출범할 경우, 정부 성격에 따라 기존 경방은 전면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2017년도 경방을 냈지만 반년여 만에 문재인정부가 새 경방을 발표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이 때문에 민감한 정책은 손을 대지 못하는 시한부 경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내년 성장률을 1%대로 낮춰 잡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현재까지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2.6%, 내년 2.2%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하향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2.0%로 하향했다. 한국은행도 1.9%까지 전망치를 낮췄다. 이들 전망치에는 최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경제적 영향은 반영되지 않았다.
◆계엄발동 후 시총 89조 증발 = 12·3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정치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점도 시장 불안요인이다. 결국 정치 불확실성이 완벽히 해소되어야 경제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 관계부처에 따르면 12·3 내란사태 이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연일 F4(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해왔다. 이날까지 경제관계장관회의만 7차례 열면서 시장과 주요국에 ‘한국경제 안정성’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증권·외환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내란사태 이후 국내 증시 시가총액은 9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1450원대에 고착되면서 폭등했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일 종가 기준 코스피·코스닥·코넥스 합산 시가총액은 2304조9289억원이다. 3일 2393조8423억원이었던 것이 88조9133억원 증발한 셈이다. 특히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4일부터 이날까지 3조289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외국인들의 달러 환전 수요가 늘면 달러환율도 덩달아 뛴다. 달러환율은 같은 기간 1402.9원에서 1451.4원으로 48.5원이나 치솟았다.
국가부도지수로 통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급등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3일 국채 5년물 CDS 프리미엄은 34.615bp였으나, 19일 37.36bp로 뛰었다. CDS 프리미엄이 올라가면 외화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결국 시장과 주요국들은 여전히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이 불안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간담회에 참석한 8개 민간기업연구소장들은 “정부와 국회가 상호공조를 바탕으로 한국 경제시스템이 정상작동 중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해외 정부·기업·투자자에 지속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