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경제위기 우려되는 고환율 비상

2024-12-24 13:00:01 게재

정부가 치솟는 원·달러 환율을 진정시키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내릴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급감한데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가용수단을 총동원하다보니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줄면서 4000억달러 선이 위협받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다. 일각에서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도는 이유다.

환율은 경제 기초체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가장 빠르게 국가의 경제적 위험에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 주요기업 연구소장들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대내 리스크로 대미 달러 환율 상승을 꼽았다. 이들은 원화약세가 먹거리 물가 등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해 민간소비 냉각, 기업 생산비용 증가에 따른 투자 및 고용 위축 등 내수경제 부진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비우호적 대외환경으로 수출경쟁력마저 약화한다면 향후 수년간 한국 경제 반등 모멘텀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환보유고, 심리적 마지노선 4000억달러 무너질 수도

정부는 시장에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 그동안 환율이 1400원 선을 넘지 않도록 면밀히 관리해왔다. 그러나 지난 2일 1400원을 넘어선 이후 줄곧 1400원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1400원을 넘은 기간이 23일간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아졌다. 지난 19일에는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1450원을 넘기도 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1400원 선이 장기간 지속할 경우 경제위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리 경제가 이를 지탱할 체력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환율 1400원대는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도 소비와 투자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 실물경제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1월에는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우선주의와 관세인상, 보호무역, 이민자 정책 등 달러 강세를 유발할 정책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견된다. 이대로 가다간 IMF 때의 1400원대 유지 기록 100일을 넘길지도 모르겠다.

원화값은 금리인하를 둘러싼 미국발 충격 이전부터 이미 약세를 면치 못했다. 내년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등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둘러싼 정국 불안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하 속도 조절 시사까지 겹치면서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폭등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초 미 달러지수가 110선대로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지수는 지난 20일 108선 중반으로 올라섰다. 달러지수가 110선으로 뛸 경우 단순 계산으로도 원·달러 환율은 1480원대에 오르게 된다. 이미 시사한 대로 미국의 금리인하가 지연되고 한은이 국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내년 초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1500원대로 치솟을 수 있다.

환율이 치솟는다고 해서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적극 활용해 환율방어에 나서기는 부담스럽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과 ‘서학개미’로 대표되는 해외투자붐 등으로 달러화 수요가 더 늘어날 여지가 많은데다 외환보유고는 줄곧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4692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외환보유고는 3년여 만인 올해 11월에는 4153억달러로 고점 대비 539억달러나 줄어들었다. 지난 10월과 비교하면 3억달러 감소했다. 그래서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벌써 내년 1월 금통위 선택에 관심 쏠리는 이유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세계 9위 수준인 데다 과거 외환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달러 채권국이기 때문에 우려가 크지 않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환투기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고환율로 인해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해외 원자재를 많이 수입하는 기업들과 서민가계의 극심한 어려움이 우려된다. 서민들은 빚내서 빚 갚기도 어렵게 돼 올들어 11월까지 개인채무조정을 신청한 인원이 역대 최대에 육박한 18만명에 달했다.

새해 첫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내년 1월 금융통화위원회가 성장과 환율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