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치구 ‘예산전쟁’
정부예산 축소, 근본원인
구의회 민주-국힘 갈등도
서울 자치구들이 예산전쟁을 벌이고 있다.
23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자치구 예산전쟁의 근본 원인은 정부 예산의 축소다. 세수 부족으로 국비 지원이 끊기면서 빠듯한 살림에 사업 축소가 불가피해졌고 남는 예산은 우선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 분야가 긴급복지 예산이다.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긴급복지 강화를 위해 만든 예산이지만 당장 서울에서만 4개 자치구에서 예산이 크게 축소됐다. 구 관계자는 “복지부 예산이 없으니 국비를 덜 주고 서울시 예산도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연쇄적으로 사업 실행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자치구들은 “꼭 필요한 일이니 만큼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산이 줄어들면 사업 위축은 불가피하다.
여야 대립이 예산전쟁의 화근이 되는 일도 있다. 일례로 올해 전국대회 4관왕을 차지하며 인기를 모았던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은 해체 위기에 놓였다. 구의회가 선수들 인건비를 포함, 농구단 운영비 예산 전액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농구단뿐 아니다. 서대문구는 홍제카페폭포 확장사업(한류문화체험관 조성), 유진상가 개발사업, 주민 평생학습 및 커뮤니티 공간 지원, 각 동 마을축제 지원사업비 등이 구의회에서 모두 삭감됐다.
구에 따르면 민주당이 주도하는 구의회는 지난 17일 확정된 합의안을 뒤집고 20일 새로운 예산 수정안을 기습 발의한 뒤 바로 통과시켰다. 구는 예결위 심사를 거쳐야 하는 예산 수정안이 일방 통과된 만큼 재의 요구를 한다는 방침이다. 구의회가 오는 30일로 연기된 최종 시한까지 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농구단 해체 및 주력사업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은평구에선 야당 의원들이 예산안 표결에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부 사업 예산 편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예산안 의결을 거부했다.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을 구에서 직접 고용하는 문제, 국제어린이영화제 사무국 운영 등이 갈등 원인이 됐다.
자치구 예산전쟁에 숨은 또다른 문제는 중앙 정치의 개입이다. 구의회 여야 의원들이 어렵게 이룬 합의를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들이 뒤집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당에서 정한 목표를 관철하지 않고 상대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당 소속 지방의원이 징계를 받는 일도 발생한다.
예산 논의를 하던 도중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부터 여러 통의 경고성 전화를 받았다는 한 구의회 관계자는 “상대 정당 소속 구청장을 견제하라는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지방자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자치구 사업은 국회와 달리 방향만 조금 다를 뿐 대부분 주민을 위한 것인 만큼 정쟁 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