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기획’ 노상원, 내란 혐의 송치
‘북 공격유도’ ‘사살’ 등 수첩 메모 발견 … 경찰 ‘비화폰 서버’ 보존 요청 공문
‘12·3 내란 사태’ 사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온 노상원 전 국군 정보사령관이 검찰에 송치됐다. 노씨는 자신의 수첩에 정치인·언론인·종교인·판사 등을 체포 대상으로 적시하고, 이들에 대해 ‘사살’이라는 표현까지 기록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24일 오전 노 전 사령관을 내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 당시 정보사령관을 지낸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이른바 ‘비선’으로 지난 3일 계엄을 기획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그는 계엄 이틀 전인 지난 1일과 계엄 당일인 3일 경기도 한 햄버거 가게에서 전·현직 군 관계자들과 계엄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는다.
특별수사단에 따르면 당시 회동에서 노씨는 자신의 사조직 ‘수사 2단’을 60여명 규모로 꾸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 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드러나는 ‘계엄 기획’ 전모 = 또 경찰은 노씨의 거처에서 확보한 수첩에서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 △정치인, 판사 등에 대한 ‘수거’ ‘사살’ 등이 적힌 메모를 확보하고 김 전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의 외환죄 혐의 등을 수사하고 있다.
실제로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에게 “노 전 사령관 수첩에는 정치인·언론인 등을 체포한다는 의미로 ‘수거 대상’이라고 적었다”라며 “여기에 ‘사살’이라는 표현이 있었느냐”라고 묻자 “사실에 부합한다”고 답했다.
우 본부장은 수첩에 오물풍선에 관한 표현도 있었느냐는 질의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우 본부장은 현재 특별수사단장을 맡고 있다.
앞서 국수본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노씨가 거주하던 경기 안산의 한 점집에서 확보한 일명 ‘노상원 수첩’에 대해 설명했다.
약 60여페이지 분량의 해당 수첩에는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판사, 공무원 등이 체포를 뜻하는 ‘수거 대상’으로 적시됐으며, 판사 등 일부 대상자는 실명이 기재돼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수용 및 처리 방법에 대한 언급도 수첩에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체포영장 청구 의견 개진할 것” = 이날 특별수사단은 대통령실에 비화폰(보안 휴대전화) 서버 등 주요 증거를 보존하라는 요청 공문을 보낸 사실도 확인했다.
우 본부장은 “(대통령실을) 두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경호처가 불응해 집행하지 못했다”며 “일단 중요 자료에 대한 보존 요청을 하는 공문을 발송한 상태”라고 밝혔다.
특별수사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으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는 지난 17일 조지호 경찰청장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 등을 위해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지난 11일 압수수색 역시 경호처가 막아섰다.
이번 보존 요청은 재판과 관련해 이뤄지는 형사소송법상 증거 보전 절차와는 다른 것으로, 대통령 관련 기록 등 각종 증거의 확보를 위한 보존 요청으로 보인다.
우 본부장은 윤 대통령이 출석 요구에 거듭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청구할지 묻는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 등의 질문에 “공조수사본부의 틀 내에서 이미 공수처에 이첩했다”면서 “소환 요구를 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공수처에서 적절한 절차를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우 본부장은 “출석요구서 발송 주체인 공수처의 판단이지만, 공수처와 저희가 조율한다면 체포영장 청구를 포함해 적극적 의사를 개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비상대기 수사관 명단 전달 안해 = 서울경찰청은 이날 비상계엄 당시 광역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의 비상대기 명단을 작성했지만 이를 국수본 등 외부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경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은 4일 0시 10분쯤 실무자로부터 “국가수사본부의 요청”이라며 “국수본이 군으로부터 수사관 100명 파견 요청을 받았으니 명단을 작성해 달라고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담당 팀장에게 명단은 작성하되 아무에게도 보내지 말고 나에게만 보고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성된 명단을 외부에 공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보고하지 않았고, 비상계엄 해제 이후인 오전 2시 3분쯤 사무실에서 대기하던 직원들도 해산시켰다고 말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의원이 서울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4일 광역수사단 소속 경감 이하 비상대기자 104명의 명단을 작성했고, 81명이 사무실에서 대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군내 구금시설 관련 수사 속도 = 한편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23일 백철기 수도군단 군사경찰단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육군 수도군단은 계엄 당일 방첩사령부로부터 구금시설을 비워달라며 미결수용수 이감 요청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부대 중 하나다.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은 앞서 국회에서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관할 B1 벙커에 체포자를 구금할 시설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받았다고 증언했다. 정치권 등에서는 수방사뿐 아니라 인근 다른 부대도 구금시설로 검토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비상계엄 당시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 지시가 이뤄진 정황을 확인 중인 검찰도 수방사뿐 아니라 인근 군단의 구금시설도 추가로 점검하거나 체포자 수용 장소로 검토된 바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세풍 구본홍 곽재우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