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권력공백기의 이상한 결정

2024-12-26 13:00:01 게재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서 탄핵정국은 해를 넘겨 이어졌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권력공백기였던 2017년 1월 12일 국토교통부는 “보증금 3억, 1년에 38만원이면 100% 보장받을 수 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제도 개선을 명분으로 보증한도를 정하는 전세가율을 주택가격의 90% 이내에서 100%로 올렸고 아파트 100%, 연립·다세대·오피스텔 80%, 단독·다가구 75%로 차등화됐던 담보인정비율도 주택유형과 상관없이 100%로 일괄 상향했다. 주택가격이 1억원일 때 아파트는 9000만원, 오피스텔은 7200만원, 다가구는 6750만원이었던 보증한도를 모두 1억원으로 올린 것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시기 결정, 대규모 전세사기로 이어져

이런 이상한 결정은 주택구입 시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매입자금 100%를 충당하는 무자본 갭투기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보증금 반환 의사도 능력도 없는 소위 ‘바지임대인’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주택가격이나 전세가격 하락 시 자동적으로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보다 높아지는 구조가 되었다. 전세가율 90% 규제, 주택유형별 담보인정비율 차등화라는 두개의 안전장치를 한꺼번에 없앤 이상한 결정은 대규모 전세사기의 예고편이었다.

2022년 이후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깡통전세·전세사기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윤석열정부는 2023년 2월 보증가입 대상 전세가율을 100%에서 90%로 하향했다. 하지만 깡통전세·전세사기 위험이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오피스텔, 연립·다세대주택, 단독·다가구주택의 담보인정비율을 차등화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주택가격이 1억원일 때 보증금 보증한도가 아파트 오피스텔 다가구 모두 9000만원으로 동일하다.

윤석열정부가 이렇게 미온적으로 대처한 가운데 전세금 미반환으로 인한 보증사고가 폭증했고 혈세 투입이 불가피해졌다. HUG주택보증공사가 대위변제한 전세보증금은 2022년 9241억원에서 2023년 3조5540억원으로 급증했고, 2024년에는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2년 전까지 매년 수천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우량기업 HUG는 2023년 한해에만 당기순손실이 3조8598억원에 이르는 적자기업이 되었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다. 또다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있다. 2024년 12월 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HUG는 보증가입 대상 전세가율을 90%에서 80%로 추가 하향하는 개선대책을 보고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12월 9일 HUG는 ‘현 시점에서 전세가율 하향 시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의 한줄짜리 보도설명자료를 배포했다. 또 다시 탄핵정국에 이상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국토부 방침 무조건 따르는 HUG의 의사 결정구조 바꿔야

이번에는 권력공백기의 이상한 결정을 시정해야 한다.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무분별한 보증 확대로 발생한 깡통전세·전세사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선 지난 탄핵정국에서의 이상한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 담보인정비율을 주택유형별로 차등화해야 한다. 보증대상 주택의 전세가율은 70% 미만으로 하향해야 한다.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에 대한 심사와 악성 임대인에 대한 보증가입 거부를 제도화해야 한다. 임대인별로 보증건수 및 액수도 제한해서 일명 ‘빌라왕’이라 불렸던 김대성이 600채 이상을 HUG에서 보증받았던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토교통부에서 결정하면 기업 이익에 반해도 HUG가 그대로 따르는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쟁과 선발이라는 외피를 입고 낙하산으로 내려와 거수기 노릇하는 HUG의 임원 감사 사외이사의 선발 과정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이상한 결정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