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외환위기, 발등의 불이다
한국의 금융시장과 기업들이 제2의 ‘외환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외국인 자금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증시는 이미 외국인 투자자는 물론 국내 투자자들한테도 외면받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은 재투자를 꺼린다. 원·달러 환율이 폭등해 1500원을 향하고 있다.
12.3 내란사태가 초래한 정국불안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확인됐다. 내년에 실행될 미국의 초강경 관세정책은 수출주도형 한국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 한국경제가 ‘양털깎기’ 대상이 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양털깎기’란 신흥국의 폭락한 자산을 헐값에 매입해 경기회복기에 팔아 큰 차익을 챙기는 투기자본의 행태를 말한다.
12.3 내란사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확인시켜
외국인의 주식순매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2월 27일 종가 기준 코스피·코스닥·코넥스 합산 시가총액(시총)은 2303조원이다. 내란사태가 일어난 3일 2393조원에서 90조원이 증발했다. 27일 시총 2303조원은 작년 말 2562조원보다 10.1% 감소했고 올해 7월 10일 2763조원보다는 16.7%나 급감한 규모다.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12월 4일부터 27일까지 18조원어치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보유한 시총은 작년 말 736조원에서 7월 10일 885조원까지 증가했다가 27일 669조원으로 낮아졌다. 27일 기준 외국인 시총 비율은 29.07%로 7월 10일 32.05%에서 2.98%p 줄었다. 같은 기간 한국 대장주 삼성전자의 외국인 보유비율은 56.45%에서 50.56%로 5.89%p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발령 전날인 2일부터 18거래일 연속 1400원대를 유지했다. 특히 19일부터는 6거래일 연속 1450원을 웃돌았다. 27일 1470원을 넘은 것은 IMF 외환위기(1997년 11월~1998년 3월)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11월~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환율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이다. 게다가 12.3 내란사태는 외환시장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더욱 키웠다. 미국 월가에서는 내란사태를 ‘선진국이면 벌어질 수 없는 일’로 인식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11월 4153.9억달러로 올해 들어서만 47.6억달러가 감소했다. 2021년 4600억달러를 넘기며 역대 최대를 기록한 이후 3년 동안 줄었다. 환율방어를 위해 외화를 소진한 탓이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외환위기 대비에 충분치 않다. 대외의존도가 높고 자본유출입이 자유로운 한국경제의 특성 때문이다. 자본계정을 100% 개방한 한국에 적합한 기준이 요구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가장 보수적인 기준(경상지급액 3개월치+유동외채+외국인 증권투자액 33.3%+거주자 외화예금)을 제시한다. 3개월 경상지급액은 1~9월 월평균 수입액 524억3000만달러의 3배인 약 1573억달러다. 11월 말 우리나라의 유동부채는 1587억달러의 2배인 3174억달러 정도다. 유동외채는 발행기준 단기외채(1년 이하)와 장기외채 중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유동성 장기외채를 합한 금액이다. 2009년 이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유동성 장기외채의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국가신용도 하락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유동부채는 추정치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유동외채를 통상 단기외채의 2배로 잡는다.
11월 말 기준 외국인 증권투자액(주식 693조원+채권 270조원)은 963조원이다. 달러로 환산하면(원달러 환율 1400원) 6879억달러이며 이것의 33.3%는 2293억달러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11월말 기준 984억달러로 9월보다 56.4억달러 줄었다. 위에서 산정한 수치들을 BIS기준에 대입하면 1573억+3174억+2293억+984억=8024억달러다. 11월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고 4153.9억달러는 BIS기준의 절반에 불과하다.
‘탄핵절차 완료’로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 해소해야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기업과 가계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의 수입가격이 오르면서 서민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도 지켜만 볼 뿐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담당자들이 분주하게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외환위기는 물이 끓는 것처럼 기화점을 지나면서 급격히 진행된다.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우두머리와 잔당들을 빨리 체포·구금하지 않는 이상 내란사태를 100% 진정시켰다고 볼 수 없다. 2025년 을사년 새해 대한민국 국민은 신속한 ‘탄핵절차 완료’를 통해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