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에 어그러진 ‘지방시대’
행정통합 국책사업 4대특구 모두 흔들
콘트롤타워 지방시대위 추진동력 잃어
집권 3년차 윤석열정부가 12.3내란사태로 파국을 맞으면서 그동안 추진해온 지방 관련 주요 정책들이 한꺼번에 어그러졌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공을 들였던 ‘전국 어디서나 잘 사는 지방시대’라는 국정기조가 3년이 채 되기 전에 위기에 직면하면서 정부와 지자체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31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정책이 시·도 통합으로 대표되는 행정체제 개편이다.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부산·경남 대전·충남으로 확산된 시·도 통합 움직임은 윤 대통령의 지지와 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이 확산되면서 탄력을 받는 듯 했다. 통합 대상 지자체들은 통합 이후 주어질 특례를 내세우며 여론을 모아가고 있었다. 행정안전부도 ‘미래지향적 행정체제개편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통합 논리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자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인 통합 이후 얻어낼 각종 특례에 대해 누구도 확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 통합에 가장 속도를 내고 있던 대구·경북의 경우 광역통합교부금 등 재정 강화를 위한 특례와 개발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영향평가 등의 권한을 통합 지자체로 이양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글로벌미래특구 지정,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도 지자체 요구사항의 일부다. 현재 통합을 추진 중인 부산·경남과 대전·충남 또한 대구·경북에 준하는 특례들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내란 사태로 정부는 동력을 잃었고, 국회는 극한 대립을 거듭하며 논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주체가 되어야 할 단체장들 또한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에 휩쓸리는 분위기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비상계엄과 대통령탄핵 정국에 이은 여야의 극한 대립 상황에서 특례와 관련한 여야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시·도 통합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특례가 빠진다면 그 자체로 통합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추진해온 각종 국책사업들도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지자체들이 사업들을 되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겹겹이다. 대구·경북의 통합신공항 건설, 부산의 산업은행 이전같은 영남권 대표 사업들은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면서 사실상 다음 정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상황이다. 대전의 대전교도소 이전, 충북의 K-바이오스퀘어, 충남의 아산경찰병원 건립 등 충청권 대표 정책들도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경기도의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이나 인천의 수도권 대체매립지 확보 같은 수도권 지자체 정책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특히 12.3내란사태 이후 더 격렬해진 여야 대립과 경제상황 악화는 주요 국책사업들을 논의의 장 밖으로 완전히 밀어냈다.
윤석열정부 지방정책의 꽃으로 불렸던 4대 특구 사업도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기회발전특구는 핵심 정책인 상속·증여세법 개정을 앞두고 논의가 중단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교육발전특구는 법적 지위와 예산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들 특구는 혼란스런 국정상황 속에서도 지자체들의 지지 덕분에 나름대로 추진동력을 유지해온 정책들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지방 정책을 총괄해온 지방시대위원회가 대통령 탄핵소추로 제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한계를 갖고 출범한 지방시대위가 대통령 부재 상황을 맞닥뜨리자 일순간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기구가 됐다.
문재인정부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소순창 건국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국가균형발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해 지방시대위가 출범할 때만 해도 나름 상승효과를 기대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1+1=2는커녕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소 교수는 이어 “다음 정부에서는 지방 정책들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상설 추진체 구성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