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국 사모펀드의 소탐대실

2025-01-02 13:00:02 게재

새해는 왔지만 희망찬 활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대립과 공동체 파괴의 독선을 떨쳐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산업 분야의 시급한 현안으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합류한 사모펀드 문제를 들 수 있다. 필자가 사모펀드(buyout fund를 지칭)에 주목하는 이유는 향후 10년 동안 한국산업의 최대 현안은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이며 그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조직이 바로 사모펀드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한국산업 역동성 회복과 재도약 열쇠

사모펀드는 상장기업이나 비상장기업을 인수해 수년에 걸쳐 기업가치를 높인 후 매각해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인수 후의 기업가치 제고 활동인데 스웨덴의 영퀴스트(Ljungqvist)가 작년에 발표한 논문 ‘사모펀드의 경제학’에 따르면 사모펀드의 기업가치 제고활동은 주로 자산의 매입·매각과 연관기업 추가 인수에 의한 사업의 재편과 효율화에 집중된다.

사모펀드 발전의 또 다른 기여는 경영자 시장(CEO market) 형성에 있다. 전문성을 갖추고 세계 흐름을 꿰뚫는 서구형 경영자 그룹이 발전하게 된다. 현재 한국산업이 처한 현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산업의 기술력 확충과 가격파괴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한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이 불가피한데 그를 충족하지 못해 위기에 직면할 우량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둘째,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내수 중심의 우량기업들은 잠재력의 발현 속도와 강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셋째, 신사업의 도입에 따라 기존사업의 축소나 폐지가 필요한 경우에도 고용의 경직성으로 인해 적기에 실행하기 어려워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이 누적되고 있다.

사모펀드 산업의 발전은 생존위협에 직면했거나 무기력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에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산업의 활력제고에 기여한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토종 사모펀드를 적극 육성해 20년이 지난 현재 사모펀드 산업은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사모펀드 전업 운용사는 2007년 17개사에서 2023년 316개사로 19배 증가했으며 2023년 사모펀드 약정액은 136조원이 되었다. 이 실적은 세계 수준 3조3000억달러의 3.2%, 아시아 수준 3440억달러의 30%에 해당한다. 이러한 빠른 성장으로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거래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대 초반 10% 미만에서 현재 건수 기준 40% 금액 기준 30%로 증가해 사모펀드는 M&A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바야흐로 사모펀드 산업은 수요와 공급 두 측면 모두에서 급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는데 그 시점에 갑자기 악재가 터졌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분쟁에 한국 사모펀드의 선구자인 MBK파트너스가 참여한 것이다. 야생의 세계인 시장에서 적대적 M&A도 정상적인 활동에 속하기는 하지만 한국의 기업문화와 국민정서상 파장이 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갈림길에 선 한국의 사모펀드 대승적 결단 내려야

지난 12월의 국민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모펀드의 M&A가 국내 산업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58%이며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19%에 그쳤다. 또한 사모펀드 M&A에 대한 대응방안을 묻는 질문에 45%가 ‘규제 강화’를 선택했고, 34%가 ‘경영권 방어 수단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현시점 한국산업의 도약에 촉매 역할을 해야 할 사모펀드 산업이 꽃도 피기 전에 시들어버리는 상황이다. 양날의 칼인 사모펀드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의 가치를 탈취하는 기업사냥꾼이 될 수도 있고 한국산업 재도약의 견인차이자 파수꾼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사모펀드 산업의 개척자이자 아시아 제일의 사모펀드를 구축한 MBK가 대립과 독선을 떨쳐내도록 김병주 회장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

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