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진단
‘강자의 자유’는 필연코 독재가 된다
2025년 새해다. 지난 연말부터 이 나라에 드리운 비상계엄의 어두운 구름이 하루빨리 말끔히 걷히고 다시금 밝은 미래가 활짝 열리기를 온 마음으로 소망한다. 무안공항 참사로도 마음이 무겁다.
이상한 대통령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K-팝의 나라 대한민국에서의 너무나도 엉뚱한 비상계엄 소식은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로써 그는 이제 자랑스러운 한 강 작가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유명인이 아니라 부끄러운 악명이 되었다.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는 느닷없는 일이 아니었다. 내란죄 수사를 통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비상계엄을 마음 속에 두고 준비했다. 그 증상은 이미 자유를 무려 서른다섯번 언급했던 대통령 취임사에서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이어 8.15 경축사에서도, 이어 9월 20일 유엔연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유별난 ‘자유 사랑’이었다.
검찰 방탄 속에 성장한 윤석열의 자유론
그런데 자유와 비상계엄, 즉 독재가 도대체 무슨 관계라는 말인가? 그가 겉으로 그토록 강조했던 자유는 그저 화려한 포장, 말잔치에 불과한 것이었고 속마음은 자유와는 전혀 무관하게 독재를 꿈꾸었던 것일까? 즉 자유와 독재는 흑과 백처럼, 물과 불처럼 전혀 무관한데 다만 윤석열이 속마음을 감추고 속임수를 썼던 것뿐일까?
아니라고 본다. 그의 특이한 자유론, 자유관이 문제였다. 윤석열의 자유 사랑은 ‘강자의 자유론’이었다. 강자의 유별난 자유론은 필연코 독재가 된다. 필자는 2022년 10월 본지 이 칼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자유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유 안에 있다. 자유를 나만을 위한 무제약적 자유로 이해할 때, 모두를 위한 대자유는 빛을 잃는다. 특히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강자의 전유물이 될 때, 플라톤이 강조한 ‘시민 전체의 자유’는 최대가 아니라 극소가 되고 만다. … 자유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있고 그 자유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하나는 존 롤스가 강조했던 모두에게 평등한 자유고, 또 하나는 플라톤이 우려했던 강자만을 위한 자유다. 모두에게 평등한 자유는 사람들 사이의 권력과 부의 높낮이를 좁혀가는 자유이고, 강자만을 위한 자유란 그 높낮이를 키워가는 자유다. 낙폭을 줄여가는 자유는 대화와 협력을 에너지로 삼고, 낙폭을 키워가는 자유는 배제와 강압을 무기로 삼는다.
윤석열의 ‘강자의 자유론’은 누구든 기소하되 자신은 소위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절대로 기소되지 않는다는 한국 검찰의 방탄장치 속에서 서서히 숙성해 온 것으로 보인다. 검찰을 수족으로 부리던 군부와 정보부가 민주화의 힘으로 한풀 꺾인 이후 피로 얼룩진 그 부정한 힘을 유일한 적통자로서 이어받은 것이 검찰이다. 즉 현재의 한국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력, 그 정점에 올라선 윤석열이 꿈꾼 강자의 자유론, 그리고 여기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비상계엄의 독재론은 민주화가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끔찍한 결과’가 된 셈이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선 윤석열이 검찰과 뉴라이트, 그리고 소위 충암고 사단 등의 군부를 끌어모아 꺾으려 했던 것은 결국 자신을 정상의 자리로 올려준 민주화운동의 힘이었다. 이제 돌아보면 윤석열의 지난 2년 반 동안의 독선적 독주(獨走)는 그것 말고는 해석이 안되는 기행(奇行)의 연속이었다.
1987년 민주화는 우선 제도정치 차원에서 선거와 정당을 정상화해서 여야간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윤석열의 그간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성과 모두를 아주 가볍게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정당부터 우습게 봤다. 입당부터 우습게 하더니 당대표도 기분내키는 대로 우습게 번번이 갈아치웠다. 자당 당대표 이하 모든 국회의원들 알기를 장기판의 졸보다 못하게 보는 듯했다. 그렇게 하여 윤석열의 여당은 아주 우습고 가벼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야당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심했다. 무시를 넘어 경멸에 가까웠다.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에 25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와 정당, 그리고 국회의원 전체를 싸잡아 우습게 보는 태도였다. 야당 대표든 국회의원 어느 누구든 꼬투리를 잡아 ‘선거사범’이나 ‘잡범’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정당과 국회를 이렇게 낮춰보는 심리는 결국 비상계엄에서 ‘체포 리스트’라는 살벌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아울러 그가 선거제도를 아무나 쉽게 조작할 수 있는 것으로 우습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선관위 출동 소동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12.3 계엄선포와 12.12 대국민담화는 그가 비판적인 야당과 국민을 싸잡아 ‘반국가세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가 하나같이 이상했던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거의 모든 인사를 극우 편향, 뉴라이트 계열의 인물들로 고집스럽게 채웠다. 왜 그렇게까지 막무가내로 했을까?
자신이 악마와 같은 ‘반국가세력’과 성스러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는 가정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국회와 사회 전반에 창궐한 반국가세력을 ‘척결’해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확실한 적으로 똑바로 인식하고 비상사태에 준하는 결기로 목숨걸고 싸워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비상계엄은 이미 이러한 불통인사에서부터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강자의 자유 목표지는 냉전시대 회귀
윤석열의 이러한 무소불위의 강자의 자유론의 목표지는 결국 냉전시대로의 회귀였다. 민주화 이후의 정당 선거 국회를 무시하고 그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인식하고 ‘척결’하려고 했던 그에게 돌아갈 곳은 거기뿐이었을 것이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와 1990년대 냉전종식을 통해 국가 위상이 한단계 상승했다.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 국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전방위 교역과 외교로 국가의 위상과 국격이 크게 높아졌다. 남북관계에서도 상호인정을 전제한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로부터였다. 그 기조는 최근의 문재인정부만 아니라 그 이전 박근혜·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념적대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탈이념의 공영의 시대가 되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지난 30~40년 대한민국이 그렇게 공들여 이룬 모든 것을 한꺼번에 부정하려 했다.
냉전시대 한국에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그저 남이 서라는 데 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에 민주주의는 없었다. 국가 위상에 대한 자부심도 낮았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어느 한편에 서면서 얻게 되는 이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다. 경제 정치 외교 모든 차원에서 손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나라를 보면 안다. 앞으로는 대립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긴밀히 소통하며 실리를 챙긴다. 냉전종식 이후 세계 판세가 그렇다. 윤석열의 외교는 이 판에서 얻는 것은 없고 자기 자산을 스스로 파기하는 길로만 갔다.
검찰권력시대 가고 시민주권시대 도래
냉전시대에 큰 권력을 휘둘렀거나 큰 부를 축적했던 것도 아닌 윤석열이 굳이 이런 외통수에 제 발로 들어선 이유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비상계엄사태에서 그의 언행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인터뷰에서 “여우가 살살 꼬셔서 곰이 철창 안으로 제 발로 들어 갔다”고 했던 설명이 재미있었지만 약간 더할 점이 있다.
여기서 ‘살살 꼬시는 여우’란 아마도 윤석열 주변에 모여든 뉴라이트를 뜻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강자의 절대 자유를 꿈꿨던 그의 의식과 무의식의 주체 없이는 이 지경에까지 이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윤석열의 불발계엄령과 함께 검찰권력의 시대는 갔다. 시민주권의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