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코리아 디스카운트’ 더는 안된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 새해가 큰 혼란 속에서 문을 열었다. 맨손으로 선진국 진입의 기적을 일으키며 세계의 갈채를 받았던 대한민국이 많은 분야에서 ‘물음표’가 붙는 나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신흥시장의 모범’으로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각광받았던 증권시장의 ‘나 홀로 추락’부터가 심상치 않다. 대표지수인 코스피지수가 지난 한해 동안 10% 가까이 떨어졌고, 코스닥지수도 20% 넘게 곤두박질했다. 대한민국 대표기업(시가총액 1위)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주가는 30% 이상 하락했다.
이런 성적표는 주요국 증시와 비교할 때 더욱 참담해진다. 미국의 나스닥지수는 지난해 30% 이상 치솟았고 S&P500 지수도 25% 넘게 올랐다. ‘잃어버린 30년’을 헤매던 일본조차 닛케이(日經)지수가 20% 상승했고, 성장동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는 중국도 상하이지수가 15%가량 올랐다.
‘선진국 진입의 기적’에서 ‘물음표’ 붙은 나라로 전락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최강자, TSMC를 거느린 대만의 자취안(加權)지수는 30% 급등했다. 주가가 80%나 치솟은 TSMC의 위세가 빛났다. 한국 증시의 유별난 부진은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는 경고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반도체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탈락할 위기에 몰렸고,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등 차세대 주요 산업에서도 갈수록 중국에 밀려나는 등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정국 혼란이 가뜩이나 부진했던 증시에 결정적인 찬물을 끼얹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와 뒤 이은 대통령 탄핵, 그런 와중에서도 그치지 않고 있는 여야 정당들의 극단적인 정쟁이 증시 추락에 결정타를 가하고 있다. 계엄이 선포된 지난달 3일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전까지 한국 주식 약 1700억원어치를 팔아치운 외국인투자자들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다시 탄핵되기까지 2600억원어치를 추가 매도한 사실이 단적인 예다.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몰려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가 있다. 환율이다. 작년 첫날 달러당 1289원으로 출발했던 환율이 마지막 날 1472원으로 치솟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해 동안 14% 넘게 뛰어오른 원화환율의 상승폭 역시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컸다.
한국과 미국 간의 금리역전, 자국 우선주의를 예고한 트럼프의 미국 차기 대통령 당선 등 여러 요인이 원화 추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국경제의 경쟁력 하락’이라는 근본 원인이 가장 뼈아프다. 이런 판국에 정치혼란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욱 최악을 치닫고 있다. 가뜩이나 추락행진을 했던 원화가치가 지난 한달 새 5%나 더 고꾸라졌는데, 이런 하락폭은 유럽연합(EU)의 유로, 영국 파운드, 중국 위안 등의 3~7배에 달했다.
이렇게 되자 무디스와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 회사들이 한국에 경고신호를 보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기업들의 해외자금 조달에 곧바로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황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나라경제를 안정궤도로 되돌려놓기 위한 여야 정당들의 정치력 복원이 시급하다.
여야 지도자들 한국경제 위기의 근본 짚어 본질적인 대책 내놔야
여야 지도자들은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의 근본을 짚어 본질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국정협의체를 제대로 가동시켜서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에 당장 머리를 맞대야 한다. 경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기업인과 자영업자 등 실물경제 주역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는 일이 시급하다. 국제 정치·경제환경 급변의 거센 파고에 대응하는 일만으로도 버거운 와중에 못난 정치가 대한민국 경제에 ‘셀프 디스카운트’의 제 발등을 찍는 일만은 즉각 멈춰야 한다.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