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과학적 믿음과 사회적 믿음
지난해 12월 3일 밤에 벌어진 친위쿠데타는 국회 탄핵과 검경의 내란죄 수사로 불이 꺼지는가 싶더니 다시 살아나 진행형으로 바뀌었다. 국민은 양쪽으로 나뉘어 정신적 내전을 치르고 있다. 탄핵이 정답이라고 믿는 집단의 대척점에 계엄도 답이라고 믿는 부류가 있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는 여러 개의 사회적 믿음의 구(球)가 마치 평행우주처럼 펼쳐져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상정하는 평행우주는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지금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믿음의 구는 상호작용과 충돌이 매우 강렬하다.
과학적 믿음의 구에서는 이 세상에 쿼크라는 기본 입자가 있고 쿼크는 강한 상호작용을 통해 중성자와 양성자라는 입자로 묶여서 원자의 핵을 만든다. 20세기 중반 만들어진 쿼크와 강한 상호 작용 이론은 거대 가속기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충돌실험을 통해 그 유효성이 꾸준히 검증되고 있다.
직접 실험에 참가하지 않은 과학자들도 쿼크를 믿음의 구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앞선 세대가 치른 치열한 검증이력 때문이다. 충분히 검증된 과학적 이론과 개념은 실험실을 벗어나 교과서에 자리를 잡고, 선배 과학자들이 지적 탐구를 통해 얻은 믿을만한 결과라는 인증을 받아 후대 세대에게 믿음 체계로 전달된다. 과학적 믿음의 구는 이론적 예측과 실험적 검증을 통해 다져진 결과들을 포섭하며 성장한다.
천재가 99% 땀과 1% 영감으로 이루어졌다면 과학은 99%의 믿음과 1%의 의심으로 이루어졌다. 99%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지적 유산이고 1%는 과학자들이 지금 탐구하고 있는 지식이다. 현재 진행형 과학자의 가장 큰 소망은 그가 밝혀낸 진리가 다음 세대에게 전달될 믿음의 구 안에 편입되는 것이다. 믿음의 구에 안착한 과학적 이론에는 보편성이 부여된다. 쿼크라는 단어의 정의는 과학자의 정치관이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쿼크에 대한 보편적 합의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진리를 밝히는 데 힘을 모은다.
가혹한 심사와 비판·검증 통한 과학 발전
사회적 믿음의 구 안에서는 동일한 단어도 보편성을 갖지 못한다. 내전에 가까운 충돌을 하는 두 집단이 똑같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동일한 개념을 사수하겠다고 외친다. 동일한 단어에 대한 생각이 극과 극을 이룬다는 건 인간사회를 운영하는 법칙이 자연과학의 법칙에 비해 한참 미성숙한 단계에 있거나 누군가는 잘못된 믿음의 구 속에 갇혀 있다는 증거다.
같은 믿음의 구를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면 사회적 믿음의 구는 재생산·확대된다. 지구가 평탄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사회를 만든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도모하는 게 진리가 아니라 동질성을 발견하는 데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이나 희열이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부 인기 유튜버들은 검증되지 않은 믿음의 구를 확장하는 데 앞장선다. 유튜브에는 검증과 반박 기능이 없다. 그 내용이 듣기 싫은 사람들은 떠나면 그만이고 남은 자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믿음의 구의 동질성은 더욱 커진다.
과학적 믿음의 구를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출판해 동료들의 가혹한 심사와 비판이라는 검증을 통과하는 것이다. 102살 이론물리학자 양쩐닝(楊振寧)은 1957년 중국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20세기 가장 탁월한 이론 물리학자 중 한 명인데 나이가 들면서 투고한 논문이 종종 동료 심사 과정에서 게재 거부되어 투덜거린다는 말을 들었다. 양쩐닝은 과학계에서 절대적 위상을 가졌지만 여전히 그의 논문은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검증받는다. 과학적 믿음의 구는 102살 노벨상 수상자 양쩐닝의 권위에 갇히지 않고 실험과 검증을 통해 진보하고 있다.
거짓을 말하는 과학자는 과학계에서 반드시 퇴출당한다. 핸드릭 쇤은 나노미터 크기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논문을 발표해 1990년대 물리학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동료 물리학자들의 의혹 제기와 검증으로 논문은 사기로 밝혀졌고 쇤은 학계에서 영구 퇴출당했다. 최근에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던 랑가 디아스와 그의 논문이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황우석 사건 역시 믿고 싶은 것과 믿을 만한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과학자의 욕심이 어떻게 퇴출되는지 보여준다.
사회적 믿음의 기본적 기준은 정직
지난 몇년간 자신이 가진 사회적 믿음의 구를 진리와 혼동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최고 권력자들을 보아 왔다. 정치는 본래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학계에도 극소수이긴하나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과학계의 연구 부정이나 논문 조작은 꾸준히 발견되고 퇴출당한다. 우리 몸이 노폐물을 끊임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것처럼 생태계에는 자정 작용이 필수적이다. 잘못된 사회적 믿음의 구는 퇴출시키고 참된 사회적 믿음의 구는 성장시키는 일은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
사회적 믿음의 구는 금강석보다 단단해서 결코 스스로 깨지거나 변화하지 않는다. 믿음의 구는 다른 믿음의 구와 충돌하면서 깨지거나 커지는 유기적인 과정을 겪는다. 탄핵에 뒤이은 고통스런 일련의 과정은 믿음의 구 사이의 충돌과 정화 과정이다.
다양한 사회적 믿음의 구 중에서 어떤 믿음의 구가 더 유익하고 가치있는 것일까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과학적 믿음의 구와 마찬가지로 정직이다. 어떤 믿음의 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더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하고 은폐하는지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다. 사실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거짓을 양식삼아 성장하는 사회적 믿음의 구는 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