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조화와 협력 필요한 에너지정책
지난해 확정 예정이었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국회 보고가 이루어지지 못해 해를 넘겼다.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의 격랑 속에서 에너지정책이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는 게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최근 탈원전, 탈원전폐기 등 정치화·진영화된 에너지정책을 생생하게 목도한 터라 더욱 그렇다.
진영간 대립의 중심에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 탈원전과 신재생 확대를 밀어붙였다. 그간 에너지정책이 경제성과 수급안정에 치우쳐 안전과 환경을 소홀히 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2022년에 들어서 윤석열정부는 탈원전폐기로 선회했다. 문재인정부가 지나치게 환경에 경도되어 안정적 에너지공급과 원전생태계를 무너뜨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진영논리가 과도하게 포장되거나 자기주장에만 매몰되면서 논쟁이 격화된 측면이 있다.
과도한 진영논리에 매몰돼 정치적 논쟁 격화
탈원전은 이미 박근혜정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탈원전 흐름이 시작되었음을 인정했고 2014년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당초 목표인 2030년 원전비중 41%를 2035년 29%로 대폭 축소했다. 2016년 경주지진을 계기로 전력수급기본계획수립 때 환경과 안전을 의무적으로 고려하도록 전기사업법이 개정됨으로써 경제성 중심의 원전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신재생 확대와 석탄발전 감축을 위한 강도 높은 대책도 박근혜정부에서 추진되었다. 당초 2035년 11% 신재생에너지 보급목표가 2025년 11%로 10년 앞당겨졌고, 소규모 태양광 무제한 전력계통 접속 허용, 장기고정가격제도 도입, 신재생의무공급비율(RPS) 상향 등 획기적인 조치가 이루어졌다.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30년 이상 노후발전기를 폐지키로 하는 동시에 석탄발전의 신규진입은 아예 금지시켰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신재생 확대는 축적된 문제가 집중적으로 분출된 결과였다.
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입지나 환경 등 사회적 갈등요소가 적절한 해결 메카니즘 없이 축적되어 오는 가운데 2011년 이후 원전 석탄발전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2012년 밀양 송전탑 사태, 2016년 경주 대지진, 미세먼지 오염문제와 함께 2012년부터는 고리1호기 정전 은폐, 품질검증서 위조, 기기검증서 위조, 한수원 사장 뇌물수수 등 문제가 집중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전기요금과 공급안정을 위해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전과 석탄발전소 건설계획이 잇달아 반영되었고 그 결과 2017년 정권이 교체되면서 에너지정책의 변화를 불러왔다.
격화된 정치적 논쟁은 국가에너지시스템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진영논리를 고집하고 상대 진영을 탓하는 사이에 에너지요금이 제때 반영되지 않아 한전과 가스공사의 손실이 천문학적으로 쌓였고 송전설비 투자와 건설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정권교체와 함께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엎듯 정책 변경이 반복되면서 기업은 정부 정책을 믿지 않았고 에너지설비 투자를 주저했다.
하루 빨리 정치적 셈법과 진영간 대립 벗어나야
더욱이 우리나라는 하루아침에 다른 에너지로 갈아탈 수 없어 급격한 정책변화는 에너지수급에 치명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LNG를 수입해 오려면 5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려면 15년 이상이 걸리고 여건상 신재생에너지를 단기간에 대량으로 공급할 수도 없다.
에너지정책은 공급안정 환경 안전 산업경쟁력 온실가스감축 등 복합적인 목표를 풀어야 하는 고차방정식과도 같다. 긴 호흡을 가지고 에너지원을 다원화하면서 원전 신재생 LNG 석탄 등의 장점은 활용하고 단점은 보완해야 풀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해 하루 빨리 정치적 셈법과 진영간 대립에서 벗어나 서로 조화하고 협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