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한국경제, 스테그플레이션 우려 ②
내란사태 후폭풍에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
국내외 기관, 한국 성장률 전망치 줄줄이 하향
반도체 부진·트럼프 당선에 수출 전망도 부정적
부진하던 내수, 계엄사태·소비심리 위축에 휘청
IMF “하방위험 우세” 경고 … “정책수단 다써야”
내란사태 뒤 소비심리까지 얼어붙으면서 국내외 기관들이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 불안이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치던 수출산업도 위태롭다. 수출산업의 핵심이던 반도체 업황도 부진하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통상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일부 기관에서는 1%대 초반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통화당국의 물가상승률 목표치(2.0%)를 고려하면 1%대 저성장은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때문에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과 금리인하 등 재정·통화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1% 성장 전망까지 = 11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글로벌 리서치 전문기업인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1.1%로 전망했다. 최근까지 주요 해외 IB가 내놓은 성장률 전망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자체 블로그를 통해 제시한 올해 성장률 1.6~1.7%와 비교하면 0.5%p 이상 낮다.
다른 글로벌 IB들도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조정하고 있다. JP모건은 기존 전망치에서 0.1%p 낮춘 1.2%를 제시했다. 씨티은행도 0.2%p 내린 1.4%로 전망했다. 작년 12월 말 기준 글로벌 주요 IB 8곳(바클레이스·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씨티·골드만삭스·JP모건·HSBC·노무라·UBS)이 제시한 평균 성장률 전망치 1.7%보다 훨씬 낮아진 것이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2.0%다. 결국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기적으로 경제의 생산성 자체가 떨어져 경기침체가 구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한국경제 성장률의 부정적 전망이 커지는 핵심원인은 한국 경제의 회복력에 대한 의문이 커진 탓이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S&P는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부동산 시장 심리와 거래 활동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디스는 한국의 정치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수출 구조적 둔화세도 문제 = 우리나라 수출이 구조적 요인으로 둔화세를 지속하는 점도 부정적 요인이다.
실제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은행은 한국의 수출 모멘텀이 예상보다 약하다고 지적했다. HSB는 한국의 수출 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고 봤다. 바클레이스는 반도체 사이클 하강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등의 영향으로 상반기 중 한국의 수출 부진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전망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수출부문 대외 리스크가 확대된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내란사태 이후 우리나라 신용등급 전망이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IMF의 정치 불확실성 우려 = 최근 한국보고서를 낸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경제의 하방리스크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이 길어진다면 투자·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금융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험이 현실화할 경우 추가적인 재정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권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IMF는 올해 한국경제가 견조한 수출 및 민간소비·투자의 완만한 회복에 따라 지난 1월 세계경제전망(WEO)과 동일하게 잠재성장률 수준인 2.0%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4.2% 수준으로 확대됐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소비 회복에 따른 수입 증가 영향 등으로 올해 3.6% 수준으로 다소 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IMF는 “올해 한국 경제 전망에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며 하방 리스크가 우세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불확실성 지속 △미국 신정부 정책 변화 △반도체 수요 약세 △주요 무역 상대국 경기 부진 △지정학적 분쟁 심화 등을 하방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 장기화는 투자·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고 봤다.
정책 대응 방향으로는 여전히 높은 기대 인플레이션과 금융안정 위험 요인 등을 고려해 점진적 통화정책 정상화를 권고했다. 한국 통화정책이 적절하게 추진되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아울러 고령화에 따른 미래의 지출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건전재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방 리스크 현실화로 성장이 둔화하고 목표 수준 이하로 물가상승률이 떨어진다면, 보다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취약계층에 대한 추가 재정 지원이 고려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가 추가로 둔화한다면 추경 등의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권고로 해석된다.
다만 IMF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외부 충격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도 분석했다. 최근 확대된 순대외금융자산(NIIP)도 대외 건전성을 지지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추경·금리인하 목소리 커진다 =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 시각이 싸늘해지면서 정부는 대외 신인도 유지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0일 “2월 중 국제금융협력대사가 주관하는 한국투자설명회(IR)를 개최해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3일에는 최지영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주재로 ‘범정부국가신용대책위원회(신용대책위)’를 가동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조기 추경 편성과 신속한 재정 집행 등이 대안으로 제기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외부 요인으로 둔화한 성장률을 보완하는 정도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15조~20조원 규모 추경을 제안한 바 있다.
금리 인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4일 한은이 공개한 ‘2025년 1차 금융통화위원회(1월 16일 개최) 의사록’을 보면 이창용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인 대부분은 향후 금리 인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