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인내자본, 공산당 주도 첨단산업 기술굴기의 숨은 주역

2025-02-13 13:00:01 게재

중국산 저비용 고효율 인공지능(AI)인 딥시크의 충격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정부가 주도해 AI 빅데이터 반도체 등 신산업 분야에 인적·물적자본을 대거 투입한 노력의 결실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국가 주도의 대역사(大役事)에 익숙하다. 이민족 방어용 만리장성이나 남쪽 강물을 북쪽 건조지대로 보내는 남수북조, 세계 최대인 샨사댐이 그 예다. 서구가 로마제국 이후 소국으로 분열되고 장원경제 등 분절된 국정으로 대규모 인프라 건설이 적었던 것과 대비된다.

중국 고유의 정치체제도 대규모 국가사업 추진에 일조했다. 진시황 이후 중앙집권형 권위주의 국정이 지금의 공산당 일당 체제에 이어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경기회복을 위해 4조위안(800조원)의 막대한 재원을 동원한 철도 도로 항만 공항 등의 인프라 투자는 막대한 부채 후유증을 남겼지만 세계적 불경기 극복에 기여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중국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대규모 투자 관행이 최근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내자본은 일반적인 장기투자와 달리 10년 이상의 장기투자로 경제적 이익을 넘어 기후변화 빈곤해소 환경보호 등 사회적 가치의 창출에 기여하며 사업성패의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할 필요가 있는 투자를 의미한다.

경제이익 넘어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출 기여

중국의 인내자본은 국내적으로는 ‘중국제조 2025’와 같이 미래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장기투자,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협력과 발전에 기여하면서 경제영토도 확장하는 개발협력사업인 일대일로가 대표적이다.

꾸준한 인내자본의 투자로 중국이 거둔 산업경쟁력 강화는 서방을 긴장시킨다. 트럼프정부 출범 직후 개별 민간기업이 주도하던 AI 산업에 대해 오픈AI·소프트뱅크·오라클이 공동으로 ‘스타게이트’를 설립해 5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은 중국이 국가 주도로 추진한 과학기술분야의 인내자본 투입 성과에 대한 위협감의 발로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공공투자 성격의 인내자본인 일대일로는 스리랑카 파키스탄 몰디브 등에서 부실사례가 있지만 선진국의 지원에서 소외됐던 저개발국들의 호응이 적지 않다. 일대일로에 대응해 서구가 B3W, PGII 등의 개도국 대상 공동투자를 발표했지만 중국과 같은 강력한 추진동력은 얻지 못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대외자산 축적에 일조하는 부수적 효과도 거두고 있다. 중국의 총대외자산은 2024년 기준 10조2129억달러로 일본의 대외자산에 필적한다.

중국의 인내자본은 정부가 투자펀드를 직접 조성하기도 하지만 국유기업의 투자 방향 조정, 벤처캐피털에 대한 세금감면 등 간접 방식도 동원한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브릭스개발은행 실크로드기금 중국아프리카개발기금 신흥시장협력기금 등도 인내자본이 투입된 사례다.

중국은 인내자본을 강조함으로써 국내적으로는 AI 로봇 반도체 통신 등 미래산업에 투입하는 막대한 재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면서 장기투자로 인한 투자환수 지연에 대한 불만도 해소하고자 한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비판받는 일대일로에 대해 빈곤해소 저개발국 지원 등 글로벌 공공재의 제공을 부각함으로써 우호적 인식을 확산하기도 한다.

인내자본이 거둔 긍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국가재원을 특정 분야에 동원함으로 인한 역효과도 상당하다. 초장기 투자로 인한 자금회수의 지연으로 국가부채가 누적되면서 추가재원의 동원에 어려움이 뒤따른다. 국책사업에서 소외된 민간산업의 침체와 취업기회 감소, 복지예산 부족 등으로 인한 민간소비 위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내자본 투입의 효율성에 대한 개선 요구도 있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신생산업 육성에 투입된 과도한 국가재원이 유발한 과잉생산이 경쟁국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인내자본 계속 동원할 수 있을지 미지수

중국의 인내자본은 대국굴기의 중국몽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공산당 주도의 국가발전전략을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인내자본의 투입에 더해 애국정신으로 무장한 이공계 인재육성 정책이 더해지면서 선진기술을 따라잡는 ‘패스트팔로우’ 전략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대중기술견제가 심해지는 지금은 ‘퍼스트무버’ 전략으로 진화해야 한다. 퍼스트무버는 창의와 자율의 정신이 숨쉬는 민간이 주체인 경우가 많았다. 중국이 ‘인민의 인내’가 비등점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국가 주도의 인내자본을 지금처럼 동원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이창열 한국통일외교협회 부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