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대선 바람타고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 현실화될까
“실질임금 그대론데 세금만 늘어” … 야당 문제 제기
근로소득세 규모, 부자감세·경기부진에 법인세 육박
과표 구간 조정, 공제 조정 등 다양한 방식 가능해
세수결손 보완대책 병행되면 현실화 … 정부는 난색
나라 세금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직장인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정부 3년간 단행된 부자감세와 최근 경기침체가 이를 부추겼다. 실제 지난해 전체 근로소득세는 60조원을 돌파해 사상처음으로 법인세 규모에 근접했다. 고소득자와 대기업 감세로 생긴 구멍을 근로자 유리지갑을 털어 메꾸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는 배경이다.
정치권에서는 소득세제 개편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현실화까지는 첩첩산중이지만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직장인들은 서민과 중산층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세를 물가상승률에 연동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렇게 하면 실질임금은 그대로인데 고물가 탓에 세금부담만 커지는 상황은 막을 수 있어서다.

◆민주당이 쏘아올린 작은 공 = 포문은 야당이 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월급쟁이는 봉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 상황임에도, 누진세에 따라 세금은 계속 늘어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초부자들은 감세를 해주면서 월급쟁이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증세를 해 온 것인데 고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이 대표의 발언은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 추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 법상 직장인들은 연간 과세표준 기준 5000만원 초과분에 대해 24%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물가연동제가 도입되면, 올해 물가 상승률이 5%라면 내년에는 과세표준도 5%(250만원) 높인 5250만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산정한다.
20일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걷힌 근로소득세는 61조원으로 전년(59조1000억원)보다 1조9000억원 증가했다. 반면 경기 부진으로 법인세수는 2023년 80조4000억원에서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17조9000억원이나 줄었다.
전체 세수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7.2%에서 18.1%로 높아진 반면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3.4%에서 18.6%로 떨어져 근로소득세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
임 의원은 “사실상 세수 펑크를 근로소득자들의 세금으로 메꾸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부자감세 후유증 서민이 감당? = 실제 부자감세가 대기업과 초고소득자만 혜택을 보고 월급쟁이 세 부담은 늘렸다는 지적은 통계수치로도 입증된다.
나라살림연구소의 2021~2025년 조세지출 예산서 분석을 보면 국세 감면액은 2021년 57조원에서 2025년 78조원(전망치)으로 21조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세감면액 증가율은 연평균 9.2%에 달한다. 반면 국세수입총액은 2021년 364조원에서 올해 412조원으로 48조원이 늘어 연평균 증가율은 3.3%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국세감면액 증가율이 약 3배 높았다.
조세지출을 세목별로 보면 감면액 증가율은 개별소비세가 16.3%로 가장 높았고 법인세가 10.7%, 상속증여세가 9.9%로 나타났다. 조세지출의 혜택은 주로 고소득자, 대기업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조세지출에서 중·저소득자의 조세지출 비중은 2021년 71.1%에서 2025년 66.6%로 4.5%p 감소했다. 반면 고소득자 비중은 28.9%에서 33.4%로 4.5%p 증가했다. 고소득자 증가율은 123%로 전제 조세지출 증가율 36.8%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또 중소기업이 기업군의 조세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70.9%에서 68.5%로 2.4%p 줄어든 반면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의 비중은 2021년 10.9%에서 17.9%로 7%p 대폭 늘었다. 대기업의 국세 감면액 증가율은 123%로 조세지출 수혜자 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고소득자, 대기업 중심의 국세 감면 증가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감세정책을 중단하고 과세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캐나다 등 물가연동제 실시 = 이 때문에 근로자들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를 물가상승과 연동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4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이미 22개국이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개국은 과세표준 기준금액에 물가를 연동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이 대표적으로 물가연동제를 운용하는 나라다. 우리나라와 독일, 호주, 일본 등은 재량적 방식으로 세 부담을 조정하고 있다. 재량적 방식은 정책 당국의 필요에 따라 비주기적으로 세제를 개편하는 방식을 말한다.
소득세 물가연동제는 물가 변동에 의한 초과 또는 과소 세 부담 문제를 자동 해결할 수 있어 물가 상승으로 발생하는 실질 세 부담 증가를 완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물가연동제 도입을 골자로 한 박범계·박선원 의원의 소득세법 개정안이 상임위 에 계류 중이다.
◆현실화까지는 산 넘어 산 = 하지만 물가연동제는 제도가 복잡하고 세수감소 대책도 마련해야 해 현실화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는 물가상승으로 발생하는 납세자의 실질 세 부담 증가를 완화할 수 있다”면서도 “제도의 복잡성, 기계적 운영에 따른 탄력성 저하 등 단점이 있고, 물가연동제 도입 시 상대적으로 세수 규모가 작아지게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득세 과세표준 기준금액 및 공제금액 등 물가 연동의 적용 범위, 소득 수준별 소득세 실효세율, 물가연동제 도입에 따른 소득세 면세자 비율의 증가 정도, 세수 감소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도 이같은 복잡성과 세수결손 대책 부재를 이유로 현재의 소득세 과세체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2년 연속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정부로서는 세금 부담 감소가 오히려 고소득층에게 유리할 수 있고, 면세자 비율이 늘어나면서 세수 감소를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는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요구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소득세 물가연동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종합적으로 한번 검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