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트럼프와 무관, 탄소중립은 가야할 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 에너지지형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는 취임 첫날 ‘국가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석유·천연가스 시추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다시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화석연료 개발 규제를 없애기 시작했고 기후변화기금 지급을 보류했다. 195개국이 참여한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파리협약에 대해 “미국 납세자의 돈을 유도하는 여러 협정 중 하나”라고 했다.
파리협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국제협약이다. 탄소배출을 ‘0’으로 하겠다는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국가도 136개국에 이른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힘 센 미국이 국제사회 협력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외면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미국은 누적 탄소배출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고, 지금도 두번째로 많은 오염 유발국이다.
트럼프 발언 이후 기후변화를 대하는 국제사회 움직임도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트럼프 주장에 동조하거나 동요하는 국가나 기업도 적지 않지만, 트럼프와 상관없이 가야할 길을 가겠다는 국가나 기업도 많다.
국제사회는 2035년까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월 10일까지 제출하도록 했는데 현재까지 제출한 국가는 16개국에 불과하다. NDC는 국가별로 2050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얼마나 줄이겠다는 목표치를 5년 또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하고 발표한다.
2035 NDC 수립은 향후 10년 동안의 경제계획 및 방향과 연계된다. 수출과 산업정책과도 직접 관련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탄핵정국으로 리더십 공백상태인 우리나라도 제출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눈치를 살피느라 정부 초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기후변화는 일종의 협력게임이라 큰 플레이어가 빠지면 동력이 약화되는 건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가 도미노처럼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까지 핵심 청정에너지 기술에 대한 글로벌시장이 3배 증가해 2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4년 임기의 트럼프를 따라가는 일은 너무 무모해 보인다. 트럼프 2기 기간에도 태양광과 풍력에너지의 잠재력은 커질 것이고 수소나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전환을 위한 신기술 발전은 진일보할 것이다.
오는 9월까지는 2035 NDC를 제출해야 한다. 그때까지 가용한 수단을 잘 점검해 나가면서 최대한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논리도 배제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정책은 꾸준히 뚜벅뚜벅 나아가야하는 길이다.
이재호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