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사고 위험을 만드는 생산과 안전의 부조화

2025-02-27 13:00:23 게재

2023년에 국내 대기업 제조현장에서 설비 정비 중에 일어난 중대재해다. 해당 공정은 자동화 공정으로 가공 설비는 폐쇄된 부스에 들어 있고 부스 밖에 별도로 설치된 운전반에서 스위치 조작으로 운전된다. 가공 중인 부품운반 역시 설비 부스들의 상부에 설치된 기계(Gantry Loader)에 의해 부스 간 자동 운반되고 부스내에서도 센서가 장착된 자동화 기계로 이동·가공된다.

이 설비 부스의 개폐용 문에는 인터록(Interlock)이 설치돼 있어서 자동운전 중에는 문이 열리지 않고 문을 열면 설비가 자동 정지된다. 설비에 결함이 생겨 자동운전 중에 정지되는 경우에도 운전반 조작 스위치를 정지로 전환해야 문을 열 수 있고 그 상태에서 설비의 이상여부 확인과 수동조작으로 정비할 수 있다. 인터록은 기업의 안전조직에서 결정, 시행한 조치이고 이를 안전수칙으로 정해 작업자들에게 교육했다.

사고는 정지 상태로 문이 열려 있던 설비의 정비를 시작한 정비반 소속 작업자가 예상치 못한 설비의 작동에 의해 사망했다. 운전자의 요청에 따라 설비를 정비한 2명의 정비 작업자 중 생존자는 설비가 정지된 상태로 문이 열려 있어서 운전정지 상태로 인식하고 정비에 착수했다고 한다. 당시 해당 설비의 문 바깥에 설치된 인터록은 해체로 인한 기능정지, 운전반의 조작 스위치는 자동운전 위치에 있는 것이 사고 후에 확인됐다.

생산 사정이 반영되지 않은 안전조치

이와 같은 인터록은 국내 산업안전 분야에서 흔히 위험을 원천 차단하는 근원적인 안전조치로 평가된다. 인터록을 해체해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은 고의적 안전조치 위반에 해당하고 안전 부서는 순회하며 이를 단속한다. 그러나 자동운전 중인 설비가 저절로 정지되는 경우에, 부스에 설치된 작은 투명창으로 정지 상태의 내부 설비에서 이상 원인을 파악하기가 곤란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사고도 이에 해당했을 것이고 운전자는 문이 열린 상태로 고장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록을 해제한 것으로 보인다. 고장을 해결하기 위한 성실한 위반이지 싶다. 문제는 생산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안전조치에 있다.

수직 수평의 여러 조직으로 나눠진 집단에서 분담된 각자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될 수 있으나 각 조직 상호 간에 미치는 영향은 흔히 간과된다. 기업은 그 전체가 각 부서 및 개인간 상호작용을 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각 조직의 역할이 다른 조직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선순환 흐름을 조성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그 상호작용을 세밀히 관찰, 조절하지 않으면 한부분의 열심이 전체시스템의 결함이 될 수도 있다.

안전과 생산은 흔히 긴장관계에 있고, 사고의 경우처럼 생산의 구체적인 흐름을 간과한 안전조치는 생산과 겉돌아 규범화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와 같은 성실한 위반을 유발시켜 사고에 기여하기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영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은 다양한 이유와 사정으로 기업의 생산·시공 현장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중 큰 변화 중 하나가 기업내 안전 부서의 권한 상승이다. 과거 기업 경영에서 생산 부서의 비중과 권한은 안전에 비해 월등한 경우가 많아 안전부서의 요구가 무시되는 경우가 흔했으나 요즘은 그 우선순위가 역전된 경우가 많아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생산의 구체적인 특성과 필요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안전조치는 생산에 부정적 영향에 더해 성실한 위반을 유발시켜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모든 안전조치는 실 작업자들의 내심적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하고 그래야 반복 교육과 훈련을 통해 내재화 시킬 수 있다.

안전시장에서도 고용노동부 지정 민간의 업무적 지위가 크게 올라갔다. 이것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현장의 구체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못해 위험을 증가시키는 내용도 있다. 정부의 명령으로 수행된 민간의 건설현장 안전진단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다.

콘크리트 골조공사가 완료된 상태의 공장건물 내부의 시스템 비계 난간과 공장 벽체 사이에 추락방호망 설치를 권고한 경우가 있었다. 해당 위치는 바닥에서 수직으로 벽을 타고 배관이 들어설 위치로 배관작업은 비계에서 안전하게 수행된다. 보고서에 제시된 난간과 벽체 사이 추락방호방은 설치·해체에 수반된 사고 위험을 만들 뿐이다.

특히 정부는 이와 같은 현장의 변화들을 세밀히 살펴서 기업과 민간기관의 안전확보가 현장의 구체적인 상황에 부합하도록 법규와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정부가 전체 생산현장의 성실한 위반을 유인해 중대재해 증가에 기여하게 된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