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절반 후려치기'…한국이 미국보다 관세 4배 높다?
한국의 작년 대미수입품 관세율 0.79%
“미국의 대한국 수입품 관세율도 비슷”
한미는 FTA 발효국, 사실상 무관세국
향후 협상조건 고려해 알고도 거짓말?
“한국의 평균 관세율은 (미국보다) 4배 높다.” 세계 주요국과 ‘관세 전쟁’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하지만 정부는 곧바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미 두 나라는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상태여서 서로 무관세를 보장하고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6일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주요국과의 ‘관세 전쟁’을 관철하기 위해 ‘트럼프식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에 저런 가짜 주장을 했다면 당장 대사 초치 등 큰 외교적 압박을 겪었을 것”이라며 “안타깝지만,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 국제외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도 했다.

◆FTA 개념도 모르는 트럼프? =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024년 기준 대미 수입품에 대한 실효 관세율은 0.79% 수준이다. ‘실효관세율’이란 환급액을 고려하지 않고 관세수입액을 전체 대미수입액으로 나눈 수치다. 만일 실효관세율이 0.79%라면, 전체 대미수입액이 1만원이라면, 관세 수입액은 79원인 셈이다. 추후 환급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0%에 가깝다. 한미 두 나라는 2012년 발효된 한-미 FTA에 따라 양국은 대부분의 상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다. 쌀 등 양국이 지정한 극히 일부의 보호품목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트럼프의 발언은 한-미 FTA 협정세율과 최혜국대우 실행세율에 대한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란 공식 입장을 내놨다. 기재부는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작년 기준 한국의 최혜국대우 실행세율(MFN applied rate)이 미국의 약 4배(한국 13.4%·미국 3.3%)지만, 이는 양자협정이 없는 WTO 회원국에 적용하는 세율”이라며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에 적용하고 있는 한-미 FTA 협정세율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과의 관세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FTA 미체결국과의 평균 관세율’을 자신의 연설에 인용한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관세의 기본원칙은 동등성인데 양국의 관세가 4배 차이가 났다면 그동안 어떤 나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절반은 후려치고 시작하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방식이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추론했다.
◆“과장발언 뒤 협상” =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내용을 부풀려 말하는 식으로 상대를 압박해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에는 주한미군 규모를 4만 명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실제 2016년 말 주한미군 숫자는 2만6000여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그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거의 내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CNN은 “한국 정부가 2021년 3월 주한미군 주둔 비용 13.9% 인상안에 동의했으며 이듬해에도 추가 인상에 동의했다”고 사실을 바로잡았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미국이 그간 3500억달러의 전쟁 비용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우크라이나 대응 작전에 책정된 금액은 1800억달러 안팎이다. 여기에는 유럽 주둔 미군 훈련 비용, 미국 무기 재고 보충비 등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 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캐나다와의 무역 적자를 2000억~2500억달러로 추산했으나, 실제로는 406억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투자은행 서드세븐캐피탈 시장전략가인 마이클 블록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과장 발언을 한 뒤 이를 조정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