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AI에 올라탄 2025년 양회
11일 막을 내린 올해 양회는 향후 중국의 경제 및 기술 전략을 전망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특히 인공지능(AI)이 핵심 의제로 부상하며 산업과 경제 전환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제 AI는 단순한 유망기술을 넘어 글로벌 패권경쟁에서 중국이 사활을 거는 전략적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은 AI를 산업 및 경제 전환의 핵심요소로 공식화하며 AI 굴기를 본격화했다. 글로벌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트럼프행정부가 대중국 기술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반도체와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자립을 더욱 강조했다.
연초 중국 AI 기업이 선보인 ‘딥시크-R1’ 모델은 실리콘밸리를 놀라게 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와 기술적 제한을 넘어서 세계적 수준의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개발 비용도 미국에 비해 1/10 이하에 불과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2025년 3월 8일자 기사)는 이를 “중국이 AI 분야에서 서방과 동등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증명한 첫 사례”라고 분석했다.
리창 총리는 정부 업무 보고에서 ‘AI+ 이니셔티브’를 지속 추진하고 디지털 기술을 제조업과 시장의 강점과 결합해 AI 모델의 광범위한 활용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AI 기반 스마트폰 컴퓨터 자율주행차와 스마트 제조 장비 등 차세대 AI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AI를 활용해 경제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려 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라고 논평했다.
AI 국가 목표 위해 민간기업 적극 활용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AI, 양자기술, 수소에너지 저장 등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1조위안(약 200조원) 규모의 국가펀드를 조성했다. 이 펀드는 20년에 걸쳐 운용되며 단기 수익보다는 전략적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서방의 민간 벤처 캐피털이 주도하는 AI 투자 방식과 차별화된 접근법을 보인다.
이번 양회에서는 AI 산업 발전을 위해 민간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기조도 확인되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장쑤성 대표단과의 회의에서 민간기업에 대한 지지를 거듭 확인하며 기술과 산업의 통합을 통한 생산성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 몇년간 정부가 주요 기술기업을 규제하던 기조에서 벗어나 이제 민간기업을 AI 분야에서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는 핵심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양회가 열리기 2주 전 시 주석은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 샤오미의 레이쥔, 그리고 딥시크의 량원펑을 비롯한 주요 빅테크 CEO들과 면담했다. 이는 중국 최고 지도부가 AI 및 기술 산업의 발전을 위해 민간 기업과 더욱 긴밀히 협력할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이를 두고 “중국정부가 AI 혁신을 위해 민간 부문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중국 AI 산업은 ‘마누스(Manus)’라는 신흥 AI 모델의 등장으로 한층 활기를 띠고 있다. 마누스는 자율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AI 에이전트로 기존 AI 모델들과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마누스는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실제 업무 수행이 가능한 AI 기술을 구현함으로써 향후 AI 시장의 판도를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025년 양회는 중국이 AI를 경제성장과 산업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 민간 부문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AI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서방 없는 AI 생태계 가능한지 여전히 의문
그러나 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서방의 반도체 수출 규제, AI 모델 간의 국제 경쟁, 그리고 내부적인 기술규제 문제가 주요 도전과제로 남아 있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의 대표적 싱크탱크 브뤼겔(Bruegel)이 올 3월에 낸 보고서 ‘중국의 AI 생태계: 진행 상황과 한계(China’s AI Ecosystem: Progress and Limits)에서 “중국이 AI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서방과의 협력 없이 자체적인 AI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AI 산업에서 진정한 패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향후 몇년간의 정책적 대응과 국제 환경 변화에 달려 있다. 이번 양회는 그 방향성을 설정하는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이 AI 산업에서 주도권을 강화해 가는 가운데,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