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예외주의 시들, 투심은 유럽·중국에

2025-03-17 13:00:33 게재

트럼프발 경제둔화 우려에 미국채 금리 하락 … 글로벌 성장 주도국 바뀔지 관심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미국 금융시장의 ‘예외주의’가 올해도 지속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그같은 분위기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시각) “관세 위협과 철회, 관세율 인상과 재인하 등 트럼프정부 정책결정의 혼란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며 경기침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즉, 미국의 예상되는 경기둔화는 에너지가격 급등이나 전쟁, 팬데믹, 은행붕괴 같은 외부충격의 결과라기보다는 트럼프 정책에 의해 초래된 자업자득이라는 것.

사업 불확실성이 증가해 투자결정이 지연되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비영리단체 ‘전미자영업연맹(NFIB)’이 집계한 중소기업 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현재 사상최고치에 근접한 상황이다.

FT는 “중간재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 기업들은 비용상승으로 타격을 입고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물가상승으로 줄어든다. 수출업체들은 캐나다와 유럽연합(EU), 중국 등 무역상대국들의 보복관세로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 아문디(Amundi)의 최고투자책임자 빈센트 모티에는 “미국예외주의가 더이상 예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점차 깨닫고 있다”며 “이는 경종을 울리는 신호”라고 말했다.

“미국예외주의, 더이상 예외적이지 않아”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9월 13일 3.67%에서 트럼프 취임 직전인 올해 1월 17일 4.69%로 100bp(1bp=0.01%p) 넘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하락해 현재는 4% 초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고착화된 인플레이션 우려보다 경기둔화 우려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증시에 낙관적이었던 투자자들이 이를 재고하게 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14일 블룸버그가 504명의 시장참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주식보다 국채가 더 나은 투자처가 될 것으로 보는 비율은 77%에 달했다. 2022년 8월 이래 최고치다. 또 올해 말 미국주식의 글로벌 시가총액 점유율 기록(50.86%)을 회복할 것으로 보는 응답자는 9%에 불과했다. 38% 응답자는 미증시 점유율이 46% 미만으로 하락한다고, 53% 응답자는 46~50.86% 사이에 위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투자자 중 약 절반이 다음달 S&P500 종목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이라고 답한 반면,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0% 미만이었다.

JP모간체이스 주식전략팀은 지난주 투자자메모에서 “투자자들은 트럼프정부 관세 부과가 계속되는 한 금융시장이 하락추세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 경제 활황에 재정부양도 한몫

최근 상황을 깊이 이해하려면 미국 예외주의의 동인을 평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탬파대학교 경제학 부교수인 비베카난드 자야쿠마르는 12일 ‘더 힐’ 기고에서 “2019년 말 이후 미국경제는 주요 7개 선진국(G7) 경제를 크게 앞질렀다. 여기서 중요하지만 과소평가된 한가지 이유는 미국이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엄청난 규모의 재정부양책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정부는 이 기간 동안 코로나위기대응법과 통합세출법, 미국구조계획법 등을 통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인 6조달러를 부양기금으로 풀었다. 이에 더해 바이든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을 추가해 경제를 더욱 부양했다. 물론 미국은 규제와 생산성 및 인구통계 측면에서 유럽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을 갖고 있다. 혁신적이고 활기찬 기술생태계는 단연 세계 최고다. 또 셰일혁명으로 세계 최고의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이 된 미국은 외부 에너지충격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부채에 기반한 재정이전(국고보조금 등)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자야쿠마르 부교수는“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에도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이 높은 수준의 소비와 투자를 지속할 수 있던 동력은 정부의 재정지원이었다”며 “2024회계연도 동안 경제성장이 견조하게 유지되고 노동시장이 활황세를 유지했음에도 미국 연방정부 예산적자는 GDP의 6.4%에 해당하는 1조8300억달러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경제체질 전환 베팅 통할까

물론 이같은 상황은 어느정도 트럼프 경제팀의 의도로 볼 수 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에 따르면 성장둔화 조짐은 미국경제가 공공지출에 덜 의존하는 ‘해독(detox)’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부분이다. 일부 투자자들도 해독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뉴버거버먼의 주식부문 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인 조셉 아마토는 FT에 “장기적으로 미국은 더 나아질 것”이라며 “GDP의 25%가 정부에서 비롯되는 경제는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경제팀은 정부주도 경제모델에서 민간투자·경쟁이 주도하는 경제모델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과정에는 힘든 조정기간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채권투자자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주식투자자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규제완화나 감세를 시작하기 전, 관세와 정부지출 삭감을 통해 먼저 ‘독소’를 제거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베센트 장관, 그리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이러한 전략을 통해 심각한 성장둔화 또는 경기침체까지 감수하고 있다”며 “만약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성장률이 회복된다면 트럼프 경제팀의 도박은 경제적으로나 선거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매체는 “이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논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중기적으로 성장둔화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성장률 저하는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유럽, 트럼프 덕에 대오각성?

미국에 대한 기대치가 변화하면서 유럽과 중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유럽 투자자들은 트럼프정부의 변덕스런 정책이 EU를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FT는 “독일정부가 최근 재정을 동원해 국방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급격하게 늘리기로 했다”며 “유럽 투자자들은 EU도 이에 대응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자본시장 통합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유럽이 국방 및 인프라에 대한 지출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최근 유럽 주식시장과 통화가치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해 들어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미국 주식시장이 부진한 성과를 내는 것과 정반대다. 14일 기준 MSCI 미국지수는 2025년 초 이후 4.4% 하락한 반면, 유로화 기준으로 MSCI 유럽지수는 7.7% 상승했다.

뉴버거버먼의 아마토 사장은 “유럽은 지금까지 말만 해왔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일들이 많다. 트럼프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으로 유럽은 이를 본격 추진할 수 있다”며 “유럽이 글로벌 성장을 주도하고 국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중국의 기술혁신은 미국의 기술적 우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에서 개발한 새로운 AI 모델은 오픈AI, 앤트로픽, 메타 등 미국 선도기업들이 개발한 최고의 모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성능을 자랑한다. 게다가 이 모델은 덜 정교한 칩을 사용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훈련됐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던 기술기업들의 주가가 흔들렸다.

자야쿠마르 부교수는 “중국 AI산업계는 실리콘밸리의 지배력에 도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기술대기업들의 엄청난 설비투자 지출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