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고 지연 이유 추측만 무성

2025-03-20 13:00:19 게재

재판관 이견 및 문구 조율에 꼼꼼한 검토

결정문 다듬기·만장일치 숙의 가능성도

갈등 해소 위한 결정문에 많은 시간 소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선고 지연 이유를 둘러싸고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세부 쟁점에 대한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거나 ‘전원일치 결론’을 위해 재판관들이 견해를 조율 중이라는 견해, 결정문에 들어갈 문구를 세심하게 다듬고 별개·보충의견의 게재 여부를 협의 중이라는 의견 등이 제기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예정된 공식 일정이 없어 이날도 평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헌재는 재판관 평의와 관련해서는 어떤 것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관 평의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이날 “평의의 구체적 시간은 비공개”라면서도 “오늘도 평의를 연다”고 했다.

이날은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6일째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63일)과 박근혜 전 대통령(91일)의 탄핵소추 후 선고까지 걸린 기간을 이미 넘어섰다.

또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이후 선고일까지 윤 대통령 사건은 이미 23일째이며, 노 전 대통령 14일과 박 전 대통령 11일을 넘긴 최장기간을 경신하고 있다.

당초 헌재가 오는 21일 선고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면서 2차례의 대통령 탄핵심판 전례상 늦어도 이틀 전인 지난 19일 선고기일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과거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 각각 선고 사흘 전과 이틀 전 선고기일을 발표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날 오전 일과시간이 시작됐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선고기일을 공개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이전의 두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보다 심리와 평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이유에 대해 추측이 무성한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재판관 이견 및 문구 조율, 만장일치 숙의 등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실무적인 작업에 헌재가 공을 들이면서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다른 일각에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 등 변수들이 헌재의 숙고 시간을 더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처럼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재판관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우선 당초 탄핵심판 초기엔 ‘탄핵 인용’이 중론이었지만, 탄핵 반대 여론 결집에 이어 윤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과 석방을 기점으로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기각·각하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최근 들어 ‘5 대 3’, ‘4 대 4’ 기각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날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치인 체포 지시나,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 등에 대한 증거나 증언의 신빙성에 대해 양측이 엇갈리는 상태에서 변론을 종결하다보니 깔끔하게 정리가 안돼 평의에서도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관들의 핵심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거나 이를 포기하고 선고할 것인지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관들이 국민통합을 고려해 만장일치 결론을 내기 위해 숙의를 거듭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여전히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헌재는 반드시 만장일치 결론이 나야 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4 대 4’로 팽팽하게 나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 이후 재판관들은 줄곧 만장일치 결정을 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12.3 비상계엄선포가 헌정질서 파괴한 범죄행위라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법률가들이 명확하게 판단하고 있다”면서 “헌재 재판관들이 결론을 내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진 것으로 본다”고 전제했다. 다만 “윤 대통령측에서 적법절차 등에 대해 이의제기(증거채택의 위법성, 반대신문권 제한 등)한 내용이 많아 중대한 사건인만큼 미치는 영향도 커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기 위해 꼼꼼하게 결정문을 작성하기 위해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탄핵 선고를 앞두고 양 진영에서 여러 사건·사고가 이어지는 등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도 선고가 늦어지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헌재가 분열된 양 진영을 설득하고 통합하기 위해 결정문 작성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느라 전례 없는 최장 시간 심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느 때보다 방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문도 선고가 늦어지고 있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탄핵 심판에 직접 출석하지 않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결정문은 89쪽 분량이었는데, 직접 헌재에 참석해 변론까지 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문의 분량은 훨씬 더 방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와 연관된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성재 법무장관에 대한 탄핵 선고도 추가 변수로 거론된다. 헌재가 한 총리와 박 장관에 대한 선고를 먼저 할 경우 윤 대통령에 대한 선고는 미뤄질 수 있다. 이와 달리 이들 세 사건을 동시에 선고하려고 한다면 결정문 작성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헌재 주변에선 선고가 이번 주를 넘길 경우 ‘100일 심리’를 앞둔 헌재가 신속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선고가 늦어질수록 분열이 심화하는 만큼 ‘늑장 판결’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질 전망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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