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헌재는 국민 신뢰 저버리지 않기를
정치권의 명운을 가를 한 주가 열렸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선고를 시작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가 예정돼 있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까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 정권과 미래 정권의 향배가 걸린 사법적 결정이 한꺼번에 이루어져 ‘사법 슈퍼위크’이자 ‘대한민국 운명의 한 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에 국민의 시선이 온통 쏠려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지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국민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나라의 운명을 헌재가 통째로 쥐고 있고 온 국민이 헌재만 쳐다보는 지금의 상황이 정상인가. 헌재에 이런 막중한 임무와 권한이 맡겨진 것이 합당한가. 그럴 자격과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가. 신뢰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들을 제기해볼 만하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헌법인 1987년 제9차 개정 헌법에 근거해 설치됐다. 탄핵심판은 위헌법률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과 함께 헌법적 권리로 헌재에 부여된 5가지 심판권의 하나다.
87체제 보완해온 헌법재판제도
현행 헌법을 흔히 ‘1987년체제’라고 부른다. 6월민주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 민의를 반영하는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 권한이라든가 5년 단임 등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기도 해 오히려 민주적 이행을 지체시키는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이런 1987년체제의 흠이나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기능을 해온 것이 바로 헌법재판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본권은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에 해당한다. 헌재는 이 부분에서 많은 법률, 심지어 헌법의 결함까지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헌법상 ‘국민’에게 부여된 기본권을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적용하도록 적극적인 결정을 내리는 식이다. 영화 사전검열 위헌 결정 등 표현의 자유 확대라든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5.18특별법 합헌 결정, 유신시대 대통령 긴급조치 위헌 결정 등 과거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기여했다.
정치권이 입법을 꺼리는 사회적 갈등 사안도 헌재가 정리했다. 호주제 간통죄 군가산제 등에 대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그 예다. 정치권이 합의하지 못한 정치제도 개혁도 헌재의 몫이었다.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든가 선거구 인구편차 2 대 1 정착 등이 헌재의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는 일에 국민적 신뢰도 따랐다. 국가기관의 신뢰도와 영향력 조사에서 헌재가 늘 1위를 차지했다. 국민의힘 등 여권을 중심으로 탄핵 심리를 졸속 편파 불공정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대놓고 비판하고 헌재에 대한 불신 여론이 확산됐다는 보도가 있지만 헌재에 대한 국민 신뢰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11~13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헌재 신뢰도는 53%로 경찰(48%) 법원(47%) 선관위(44%) 공수처(29%) 검찰(26%)에 앞서는 1위를 기록했다. 12.3비상계엄 후 시행된 다른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37년 전 민주화와 함께 도입된 우리 헌법재판제도는 민주화 속도에 비례해 빠르게 성장했다. 1987년체제의 산물로서 1987년체제를 수호하는 것은 물론 그 한계를 메우고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민주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제도의 성장 과정도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헌재에도 운명의 한 주 될 것
12.3비상계엄 또한 1987년체제를 윤 대통령이 전복하면서 벌어진 사태다. 야당은 물론 국회와 불통하면서 정치가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말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탄핵심판 또한 1987년체제의 결과물이다. 선출된 권력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정치의 사법화가 최고조에 이른 모습이다.
윤 대통령 탄핵을 놓고 진영이 양극단으로 나뉘면서 헌재의 고민이 깊어질 듯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부터 헌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제도적 대안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양 진영의 압박이 거세더라도 헌재는 국민 신뢰에 기반한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어쨌든 헌법재판소에도 운명의 한 주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