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사고 갈등 해법은 형사특례 아닌 소통 강화다

2025-03-24 13:00:24 게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022년 의사들이 연평균 754.8건 기소된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의료계는 이를 근거로 검찰의 기소남발과 법원의 중형 선고에 의한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주장하며,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책 특례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에서 해당 기소 건수의 진위가 논란이 되었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자 의료계는 형사고소로 의사가 경찰에 소환돼 범죄인 취급을 당하고, 장기 수사를 받는 심적 부담으로 고위험 필수의료를 기피한다고 주장했다.

무과실 의사, 소환 생략·불기소 필요

형사고소를 당하면 경찰 소환 조사를 받는 것은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형사절차다. 소환 조사를 의사만 제외하는 특혜성 형사절차를 신설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그러나 의사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 고위험 필수의료 기피 현상 해소라는 공익을 고려해 의사에 대한 소환 조사를 생략하고 불기소 처분해 신속히 형사절차에서 벗어나도록 할 필요가 있다.경찰이 의뢰하면 ‘의료사고심의위원회’는 150일 이내 의료감정과 심의과정을 거쳐 필수의료 여부와 업무상 과실 유무를 판단해 결과를 경찰에게 보낸다. 경찰은 그 결과를 토대로 추가 수사를 한 후 검찰에 최종 수사 결과를 보낸다.

검찰은 필수의료이면서 업무상 과실이 없는 경우 의사를 소환하지 않고 불기소처분한다. 의료계의 불만을 해소하면서 피해자 입장에서도 현재보다 강화된 의료감정 절차를 거치고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단체, 법조인이 참여한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므로 불리하지 않다.

문제는 정부가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서 필수의료 여부와 함께 업무상 과실 유무가 아닌 중과실 유무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또한 필수의료이면서 무과실인 경우뿐만 아니라, 단순과실인 경우까지 의사 소환을 생략하게 불기소처분하는 과도한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다. 현행 형법 체계는 업무상 과실 유무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게 되어 있을 뿐, 업무상 과실을 다시 중과실과 단순과실로 구분하지 않는다. 의료사고 결과도 사망은 제외하고 있지만 경상해뿐만 아니라 중상해까지 모두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수사단계에서 무과실이 아닌 단순과실로 경상해와 중상해 의료사고를 낸 의사에게 불기소처분 특혜를 주는 것으로써 부당하고 위헌적이다.

의료사고 설명의무 도입해야

중과실의 범위도 문제다. 정부는 진료기록 위변조, 무면허 의료행위, 불법 대리수술 등과 같은 의료법상 범죄행위와 수술 부위 착오 수술, 비일치 혈액형 수혈 등 환자안전법상 의무보고 대상 행위를 포함해 12개 유형만 중과실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그 이외 다른 모든 과실은 단순과실로 분류된다.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의료사고는 단순과실로 발생한 것이 되고, 필수의료에 해당하면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통해 수사단계에서 불기소처분 특혜를 받게 된다.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고통과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에 더해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하고, 사과받지 못하는 울분, 입증의 어려움, 고액의 소송비용 부담까지 안게 된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사고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특례 제도나 입법이 아닌 의료사고 설명의무, 의료사고 관련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 의료사고 피해자 트라우마센터 설치, 입증책임 부담 완화를 위한 제도 개선과 입법부터 해야 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