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테크전쟁 시대에 부동산 타령하는 나라

2025-03-24 13:00:23 게재

세계 주요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그 중 특히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가 놀랍고 무섭다. 연초 미국 기업 오픈AI 대항마로 가성비 높은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한 스타트업 딥시크에 이어 18일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기업 비야디(BYD)가 5분 충전으로 400㎞ 이상 주행 가능한 ‘슈퍼 e-플랫폼’을 공개했다. 슈퍼 e-플랫폼은 15분 충전으로 300㎞ 안팎 주행하는 미국 테슬라의 슈퍼차저를 능가한다. 자동차시장 판도를 바꾸리라는 평가와 함께 BYD 주가는 연초 대비 50% 넘게 올랐다.

BYD 지커 샤오미 샤오펑 등 중국 메이커에 밀려 중국 내 판매가 급감한 폭스바겐은 독일공장 폐쇄와 함께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폭스바겐 신용등급을 낮췄다. 다급해진 폭스바겐은 자체 공장에서 만들어 구내식당에 공급하고 본사가 있는 니더작센주에서 팔아온 소시지 생산을 늘리고 방위산업 진출을 꾀하는 플랜B를 가동했다.

독일의 자존심인 폭스바겐의 굴욕은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AI를 탑재한 전기차 개발을 망설인 데서 비롯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 신생 기업들이 세계를 긴장시키는 것은 2015년 미래 핵심 기술과 산업 육성이 목표인 ‘중국제조 2025’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뒤 꾸준히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고 창업과 기업활동을 뒷받침한 결과다.

5분 만에 충전하는 BYD, 소시지 판매 늘리는 폭스바겐

중국의 AI 굴기는 ‘다크 팩토리(Dark Factory·어두운 공장)’로 통한다. AI와 산업용 로봇, 각종 센서를 갖춘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생산공정을 완전 자동화해 조명을 켤 필요가 없어 붙인 명칭이다. 이를 앞서 실현한 곳이 스마트폰과 가전 분야 글로벌 기업 샤오미다. 샤오미 창핑 공장은 다크 팩토리 시스템으로 1초에 1대씩 스마트폰을 생산한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딥시크 R1 모델도 공공 부문과 민간 기업에 속속 녹아들고 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선전시 룽강구는 딥시크 모델을 도입해 행정승인 업무의 정확도를 높이고 시간도 단축했다. 가전업체 미디어는 사용자가 말하는 의도를 이해해 온도·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에어컨을 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이어 4년 만에 관세전쟁과 기술패권 경쟁 2라운드를 벌이고 있다. 관세전쟁 포문을 먼저 연 미국이 유리할 줄 알았는데, 최근 뉴욕 월가는 ‘트럼프 풋(Put)’은 저물고 ‘시진핑 풋’이 떠오르는 분위기다.

트럼프 풋이란 트럼프의 발언과 정책이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주가 하락을 막을 것이라는 기대를 말한다. 하지만 오락가락 관세정책과 물가상승으로 주가가 하락하며 트럼프 풋이 실종됐다. 대신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경기 진작과 기업친화적 정책을 내놓으리란 기대감에 “‘시(習) 풋’ 시대가 왔다”는 투자업계 반응이다.

중국은 지난달 2차 미중 관세전쟁 발발 직후 시 주석이 주재한 민영기업좌담회에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 BYD 왕촨푸 회장 등 미국과의 기술패권 다툼 선봉에 선 첨단산업 분야 리더들을 앞에 앉혔다. 1차 관세전쟁 때인 2018년 좌담회에 불렀던 완커·헝다·비구이위안 등 부동산개발업체는 배제했다.

중국은 지난해 부동산시장 침체가 경기 부진의 결정적 요인이었지만 부동산 부양책을 쓰지 않았다. 이런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국 정부는 3월 초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에서도 첨단산업 육성 의지를 강조했다.

중국도 부동산 잡는데 한국은 정책 참사

한국은 어떤가. 금리인하 시기와 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 강남 요지(잠실·삼성·대치·청담동)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가 아파트값이 치솟자 35일 만에 해당 지역은 물론 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로 확대 재지정하는 정책 참사를 빚었다.

조기 대선을 의식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충분한 협의 없이 해제했다가 번복해 시장 혼란을 자초했다. 중앙부처의 행정 난맥상도 심각하다. 미국이 1월 초 원자력·AI 등 첨단기술 분야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민감 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추가했는데 두 달 동안 몰랐다.

탄핵정국 상황에서 정치는 실종됐고 정부는 무능 무기력 무책임하다. 국가 리더십의 장기 공백 상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속은 타들어간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신속히 함으로써 국정 리더십을 확립해야 마땅하다.

양재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