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미국 최고 아이디어’ 국립공원의 행방은 어디로

미국인이라면 1872년 세계 최초로 시작되어 '미국 최고의 아이디어'로 일컬어지는 국립공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퓨 리서치 센터 2024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부 기관은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 NPS)으로 우정사업본부와 나사(NASA)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또한 국립공원은 2023년 미국경제에 약 560억달러를 이바지한 경제 엔진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립공원관리청
1872년 미 의회는 미국 최초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 설립을 승인했다. 이후 몇년 동안 국립공원과 기념물 목록은 계속 늘어났고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국립공원관리청을 설립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현재 국립공원관리청은 50개주, 컬럼비아 특별구 및 미국령에 걸쳐 34만㎢가 넘는 433개의 국유지를 관리하고 있다. 미국 영토의 3.4%에 해당하는 이 국유지에는 63개의 국립공원 외에도 87개의 국립기념물, 76개의 유적지, 11개의 국립전적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31개주에 걸쳐 있는 미국의 63개 국립공원은 21만㎢에 달한다. 대한민국 영토의 두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가장 규모가 큰 국립공원은 알래스카 중남부에 있는 ‘세인트 엘리어스 국립공원’으로 약 3만㎢의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국립공원이 그렇게 거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가장 작은 국립공원인 미주리의 ‘게이트웨이 아치 국립공원’은 면적이 1㎢도 채 되지 않는다.
국립공원 기념물 기타 유적지 등 국립공원관리청이 관리하는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23년에는 3억25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공원을 방문했다. 이는 2010년에 비해 약 16% 증가한 수치다. 2024년에는 그 수가 또 늘어 3억3190만명, 전년 대비 2% 증가해 역대 가장 많은 방문객 수를 경신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주 경계에 걸쳐 있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이 가장 인기가 많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곳이지만 다른 공원에 비해 접근성이 좋고 이용 시설들이 다양해 작년에는 1200만명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그랜드 캐니언 자이온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비영리 단체인 국립공원보존협회에 따르면 국립공원관리청의 직원수는 지난 10년 동안 약 13% 감소했다. 국립공원관리청의 예산이 인건비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공원 직원 수는 더욱 감소했다고 한다. 즉 방문객을 관리·감독하면서 인간이 공원과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인력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소식은 최근 트럼프정부가 대규모 해고와 고용 동결을 발표한 가운데 나온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정부는 광범위한 연방 인력 감축의 목적으로 국립공원 성수기가 시작되기 불과 몇 주 전인 2월 14일에 국립공원관리청 전체 인력의 5%, 약 1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그날 많은 연방 근로자가 비슷한 내용의 해고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밸런타인데이 대학살’이라고도 불린다.
감원대상은 수습기간 중인 직원으로, 최근에 채용되었거나 막 새로운 직책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정리해고에는 퇴직 연기를 선택했거나 정규직 채용 제안이 취소된 직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밸런타인데이 대학살'로 국립공원 위기
일반적으로 국립공원관리청 직원들은 입구에서 요금 징수를 담당한다. 또한, 방문자 센터에서 일하면서 센터 내 직원을 배치하고 레인저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할도 맡는다. 캠프장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관리인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은 방문객에게 등산로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주거나 야생동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감독하는 등 국립공원의 다양하면서도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며 방문객을 보호하고 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등산로에서 길을 잃은 등산객을 구조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국립공원 내에서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여러 차례 발생한 이후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부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등에서 열 관련 질병위험 가능성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직원수가 지나치게 줄어들면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의 운영 시간도 덩달아 줄어들고 가이드 투어를 취소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방문객에게 각 해당 지역의 역사 및 생물학과 자원 등을 알려 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수 역시 줄어들 것이다. 공원 내 쓰레기가 쌓이는 곳도 늘어나며 유지보수 관련 업무 당연히 지연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국립공원관리청은 연방정부의 고용 동결 조치에 따라 이전에 폐지했던 단기 계약직 제도로 부족한 인력을 충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단기 계약직 직원은 입장료 징수부터 야생동물 연구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국립공원관리청 관계자는 이러한 일자리가 언제 정상화될지는 불분명하며, 갑자기 사라진 인력들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급하게 채용된 단기계약직 직원들이 방문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원 보호와 공원이 잘 운영되도록 전문성과 경험을 쌓은 정규직 직원을 바로 대체하기란 어렵다.
전문가들은 서류작업, 신원조회, 교육과정, 주거지 물색 등으로 인해 여름 성수기까지는 물론이고 당장 필요한 단기 계약직 일자리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성수기는 공원마다 다르지만 추운 지역에서는 5월부터 9월까지, 따뜻한 지역에서는 3월부터 시작된다.
사실 지금까지 수많은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인 자연을 지키고자 앞장서왔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환경보호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환경보호 노력을 기려 노스다코타주 황무지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국립공원이 세워져 있을 정도다. 미국 내 국립공원 중 개인의 이름을 딴 경우는 루스벨트를 제외하면 없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5년 국립공원관리청 50주년을 맞아 10년 동안 국립공원 관련 예산에 약 1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미션 66’ 발전 계획을 승인했다. 재임 기간 22개의 국립공원을 지정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 국립공원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지구상의 위대한 국립공원(Our Great National Parks)’의 내레이터를 맡기까지 했다.
카터 대통령은 그의 임기 동안 환경보호에 앞장섰던 자신의 기록을 자랑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적극적인 환경보호 활동으로 39개의 국가관리 자연유산이 새롭게 조성되었다. 그리고 1978년 12월 1일, 그는 행정 권한을 사용해 알래스카에만 13개의 국립기념물을 지정함으로써 국립공원관리청이 관리하는 토지의 면적을 두배 이상 늘리기도 했다. 그래서 2016년 카터가 명예 국립공원 관리인이 되었을 때 그가 국립공원관리청에서 수여하는 민간인 최고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데 그 누구도 반론할 수 없었다.
역대 대통령과는 정반대 길 가는 트럼프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미국 전역의 국립공원은 연방정부의 일방적인 해고로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 공원 시설물 예약부터 청소, 교육에 이르기까지 연간 수백만명의 방문객에게 제공하던 서비스가 위협받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 월리스 스테그너는 국립공원이야말로 미국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렇게 미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국립공원이 심각한 위기로 번질 수 있는 문제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