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전장으로 바뀌는 바다, 한국은 준비됐나
‘선박 전쟁.’ 미국의 전략국제연구소(CSIS)가 최근 발행한 보고서 제목이다. 거대한 선박을 뱃머리에서 촬영한 사진을 표지사진으로 채택해 ‘전쟁’을 냉혹한 이미지로 전달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군·민 융합’ 방식으로 2000년대 이후 20여년에 걸쳐 자국 조선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주문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 각국의 상품을 나르고(해운) 정보를 전달(해저케이블)하던 바다가 전쟁터로 변할 조짐이다. 중국 조선소는 상업과 군사 협력 정도에 따라 4단계로 입체적으로 조직됐다.
1단계는 국영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소속 조선소 중 해군 군함을 생산하는 곳, 2단계는 CSSC에서 상업용 선박을 건조하지만 군사 프로젝트와 밀접하게 연관해서 생산하는 곳, 3단계는 CSSC가 아닌 다른 국영기업이 소유한 조선소로 국가 안보에 따라 동원될 수 있는 곳, 4단계는 군사 관련 활동이 제한적인 민간 또는 외국 소유 조선소지만 중국의 규제를 받는 곳이다.
상업조선 능력이 군사조선 능력을 뒷받침하는 이 구조를 통해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은 전함수 기준으로 미국 해군을 능가해 세계 최대 규모가 됐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을 지나 건국 100주년(2049년)을 중화부흥의 잠정적인 목표시점으로 잡고 있는 중국은 한편으로는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며 공존을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보다 230배 커진 중국의 조선산업 능력에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은 ‘즉각’ ‘집요하게’ 대응하고 있다. 방향은 다시 해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해운·조선에서 시작해 파나마운하 홍해 등 초크포인트(글로벌 해운 주요 길목)와 북극해(그린란드, 쇄빙선)까지 전선을 넓힌다. 미국의 조선 부문 대응도 ‘군·민 융합’ 방식이다.
중국은 4000m 바다 밑 해저케이블을 절단할 수 있는 기구를 개발(3월 22일 블룸버그)하며 해양 헤게모니를 실현할 도구를 확대하고 있다. 심해 케이블 절단 장치는 중국의 첨단 유·무인 잠수정과 함께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팽창하는 중국과 위기를 느낀 미국의 ‘선박 전쟁’은 해양에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남중국해는 가장 충돌 가능성이 높은 바다로 꼽힌다. 에너지와 곡물, 전략물자들을 해상공급망을 통해 들여오는 우리는 남중국해가 막히는 상황을 스스로 돌파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태평양으로 나가는 바다가 일본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둘러싸인 우리는 일본 중국과 해상 경계선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바다는 영토·주권·식량·공급망·군사·기후대응 등이 얽힌 거대한 장이다. 해양 부문을 종합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시급하다.
정연근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