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날’이 ‘분노의 날’로 바뀌다
트럼프 관세폭탄, 미국 안팎서 저항 … 각국은 공동대응·개별협상 ‘고심’

이번 조치는 미국이 주장하는 ‘불공정 무역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명분 아래 진행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먼저 각국이 미국에 대한 착취를 멈추고 자국의 무역장벽을 철폐해야만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각국이 미국을 착취하는 것을 멈춘 후에야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는 관세 인하가 협상의 결과가 아닌 선제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히며, 이번 조치를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이라 정의했다.
미국은 10%의 기본 관세 외에도 국가별로 차등화된 상호관세를 적용했다.
한국은 25%, 일본은 24%, 대만은 32%가 부과됐으며, 이는 미국 기업에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던 국가들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특히 한국은 백악관 행정명령 부속서에 처음 26%로 기재됐다가, 한국 정부의 항의와 협의 끝에 25%로 정정되는 혼선도 겪었다. 관세율 1%포인트 차이는 전체 수출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수정이었다.
이번 조치 이후 각국은 일방적인 양보보다 협상에서 실질적 보상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먼저 행동한 한국, 일본, 대만의 사례에서 학습한 것이다. 미국과 교역국 간 협상은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 ‘시간이 누구 편이냐’를 둘러싼 기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국제사회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산 자동차에 25%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정면 대응에 나섰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 기업들에게 당분간 미국 투자를 보류하라고 요청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결정은 잔인하고 근거 없다”며 “유럽은 단결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와인과 증류주 업계는 약 1조원에 달하는 수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방 의회는 ‘2025 무역검토법’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이 법은 대통령이 새로운 관세를 도입할 경우 그 사유와 경제적 영향을 의회에 설명하고, 60일 이내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이 민주당과 뜻을 같이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관세 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현재 구도에서는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적 충격도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있다. 뉴욕증시는 발표 직후 폭락했다. 다우지수는 -3.98%, S&P 500은 -4.84%, 나스닥은 -5.97% 급락했다.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이번 조치가 인플레이션을 최대 1.5%포인트 상승시켜 소비를 위축시키고, 미국 경제를 침체 국면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UBS도 미국이 기술적으로 경기침체에 진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관세의 평균 실효세율은 23%에 달하며, 이는 1차 세계대전 전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 변화다. 미국은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 주장하지만, 물가 상승, 소비 위축, 글로벌 공급망 혼란 등 부작용도 감당해야 한다. 각국은 개별 협상에 나설지, 국제 연대를 구성해 공동 대응에 나설지를 놓고 치밀한 계산에 들어갔다.
관세는 ‘양날의 검’이다. 미국도, 교역국도 장기전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누가 먼저 협상에 나서고, 누가 유리한 조건을 쥘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꺼낸 ‘관세 폭탄’은 이제 단순한 선언을 넘어 세계 경제와 외교 전략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세계는 지금 ‘관세의 시대’라는 낯선 국면에 직면해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