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강한 상호관세에 글로벌 금융시장 패닉
뉴욕증시 시총 4500조원 증발…유럽·아시아 증시도 폭락
경기침체 우려에 국채금리·국제유가도 급락 … 달러 약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한 다음 날인 3일(현지시간) 글로벌 금융시장이 최악의 공포에 휩싸였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확산 초기 이후 5년 만이다. 예상보다 강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가 글로벌 무역전쟁을 격화시키며 무역 상대국은 물론 미국 경제에도 막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란 우려에 투자자들은 주식을 투매했다. 뉴욕증시 시가총액은 하루 새 3조달러(약 4500조원)이 증발했다. 유럽과 아시아증시 폭락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다우 4%↓·S&P지수 5%↓·나스닥 6%↓=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일보다 1,679.39포인트(-3.98%) 떨어진 40,545.9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274.45포인트(-4.84%) 급락한 5,396.52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일대비 1,050.44포인트(-5.97%) 급락한 16,550.61에 각각 마감했다.

다우 지수와 S&P500 지수는 각각 2020년 6월 이후, 나스닥 종합지수는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S&P500 지수는 이날 하락으로 지난 2월 고점 대비 약 12% 떨어지며 다시 조정 국면에 진입했으며,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저점 기록을 경신했다.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 지수는 이날 6.59% 떨어지며 지난해 11월 고점 대비 22% 낙폭을 기록, 기술적 약세장에 진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뉴욕증시에서 이날 하루 약 3조1000억달러 규모의 시총이 증발했다.
예상 수준을 웃돈 고율 관세가 상대국의 보복 관세를 불러오고 결국 미국 경제에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뉴욕증시 투매를 불러온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국 바깥 공급망에 생산 의존도가 큰 주요 기업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날 나이키가 14.44% 급락했고, 할인상품 유통체인 파이브빌로는 낙폭이 27.81%에 달했다. 갭(Gap) 등 의류 브랜드도 20.29%의 낙폭을 기록했다.
◆빅테크 기업들도 충격 = 대형 기술주 기업들도 관세 충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시총 1위 애플은 9.25% 떨어졌고, 엔비디아는 7.81%의 큰 낙폭을 보였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관세 정책이 100% 변경 없이 진행된다면 빅테크의 실적 추정치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M7 기업 중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애플, 아마존 닷컴, 테슬라, 엔비디아 등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은 상호관세 영향으로 생산 비용 상승 가능성 존재한다. 주요 생산국인 중국, 베트남, 인도에 높은 수준의 관세 부과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마존 닷컴은 상호관세 영향으로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의 판매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이커머스 판매 볼륨 감소가 불가피하다. 테슬라의 경우 자동차 생산 공장이 전세계에 분산되어 있다는 점에서 경쟁사 대비 자동차 관세 피해의 정도는 낮겠지만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관세 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해 실적 추정치 하향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엔비디아 또한 반도체가 품목에서 제외됐더라도 서버나 그래픽 카드 완제품은 조립국에 따라 관세 부과가 가능하다. 최근 미국 조립 확대 및 공급망 재편 가능성 감안하더라도 부정적 영향은 여전히 존재한다.

◆‘46% 관세’ 베트남 증시 20여년 만에 최대 낙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폭탄에 아시아와 유럽 등 전 세계 증시도 일제히 동반 급락했다.
유럽 대형주 지수 유로스톡스50은 전장보다 3.57% 떨어졌고, 독일 지수 DAX40은 3.08%, 프랑스 CAC40은 3.31% 각각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유럽산 수입품에 20%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FTSE100 지수는 1.55%, 스위스 SMI 지수도 2.34% 하락했다. 영국은 10%, 스위스는 32%의 관세가 부과됐다.
주요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러시아의 RTSI 지수도 덩달아 1.98% 떨어졌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는 전일대비 2.77% 하락하며 작년 8월 이후 처음으로 3만5000선 아래로 내려갔다.
중국 본토의 상하이종합지수는 0.24% 하락했고, 홍콩 항셍지수는 1.52% 하락 마감했다. 대만 증시는 3일 청명절로 휴장했다.
호찌민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VN지수는 6.68% 급락하며 2001년 9월 이후, 20년 만에 일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베트남을 겨냥해 46%의 초고율 상호관세를 책정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달러지수 101선으로 내려가 =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채권금리는 급락하고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도 하락세를 보였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4.03%로 전일 대비 10bp(1bp=0.01%p) 급락했다. 2년물 국채금리는 3.69%까지 내려갔다.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 매수세가 몰린 영향이다.
국제유가도 급락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종가는 66.95달러로 전장보다 4.76달러(6.64%) 떨어졌다. 경기침체로 원유 수요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 속에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일부 국가가 증산 결정을 한 게 유가를 끌어내렸다.
미국 달러화 가치도 급락했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화 인덱스는 미 증시 마감 당시 101.93으로 전일보다 1.81% 하락했다. 달러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유로화와 엔 가치는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도이체방크의 글로벌 외환 책임자인 조지 사라벨로스는 “(달러의) 극적인 움직임을 고려할 때 달러가 더 광범위한 신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 금값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도 불구하고 이날 하락했다. 이날 뉴욕증시 마감 무렵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3108.3달러로 하루 전 같은 시간 대비 0.5% 하락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최근 금값이 상승랠리를 이어간 가운데 유동성 부족에 직면한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증시 이틀 연속 하락…반도체주 급락 = 3일 오전 국내 주식시장에서 코스피와 코스닥은 뉴욕증시 폭락에 이틀 연속 하락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관세 도입이 임박했다고 밝힌 여파로 4일 장 초반 반도체주가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일보다 1.46% 떨어진 내린 2450.49에 장을 출발한 코스피는 오전 9시 24분 현재 전일대비 1.36% 내린 2452.92에서 등락 중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2913억원, 27억원 순매도하고 있고 개인은 2857억원 순매수하고 있다. 코스피200선물 시장에서도 외국인은 3756억원 순매도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를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삼성전자(-2.08%), SK하이닉스(-4.42%) 등 반도체가 큰 폭으로 내리고 있다.
같은 시각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0.85% 하락한 677.66이다. 코스닥은 전일 대비 0.29% 내린 677.23으로 출발한 후 낙폭이 커졌다.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446억원, 96억원 순매도하고 있고, 개인은 595억원 순매수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장보다 16.5원 내린 1,450.5원으로 출발했다. 국내 증시는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를 대기하는 분위기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