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한류 비즈니스 개척자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버리면 시장이 보입니다"
'잠비아의 오뚝이' 박익성 SM코리안 사장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인간의 여러 방편들 중에서도 '맨땅에 헤딩하기'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2000여 년 전에 쓰여 진 성서 속의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씀은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바로 '맨땅에 헤딩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쯤이 되지 않을까. 그 오랜 역사 뿐 아니라 그만큼 탁월한 효험을 자랑하는 삶의 기술이 또 있을까.
영어라곤 '땡큐' 밖에 아는 말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무작정 짐을 싸들고 미지의 검은 대륙에 발을 디뎠다. 며칠 동안의 해외 나들이를 떠난 것도 아니었다. 아프리카 한 가운데 위치한 잠비아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보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떠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삶에 도전장을 던졌다. 한 번도 손대보지 않은 안경점과 세탁공장, 건축업, 금광업 등 새로운 사업의 문을 차례로 두드렸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기' 식의 사업을 하나하나 열어간 것이다. 사업은 하나같이 대박을 터트리거나 짭짤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잠비아에서 세탁공장 '도쿄 론드리'와 투자회사인 'SM Korean'을 운영하고 있는 박익성(54) 사장의 이야기다. 2005년 설립된 잠비아 한인회의 초대회장에 선출된 이후 2011년까지 세 번 연속 한인회장에 선출될 정도로 동포사회의 신망을 얻은 인물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땅을 밟은 지 14년째인 그는 지금 잠비아에서 가장 큰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롯지(우리나라 모텔급 숙박업소)와 상가건물을 건축하기도 했다.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를 한 뒤 게임방과 비디오 대여점, 횟집을 전전하던 경상도 사나이가 어떻게 잠비아의 대 사업가로 변신한 걸까.
루사카 다운타운과 연결되는 노스미드 지역의 큰 도로변 담장에 'Tokyo Steam Laundry & Dry Cleaning'이란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루사카 세탁시장의 30%을 장악하고 있는 박 사장의 세탁공장이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꽤 널찍한 마당이 나타나고 하얀색 단층 건물 두 채가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첫 번째 건물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젊은 흑인 아가씨 네 명이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어라고는 '땡큐' 한마디 밖에 모르는 상태로 아프리카 땅을 밟은 박익성 SM코리안사장은 잠비아에서 안경점과 세탁공장, 건축업, 금광업 등에서 줄줄이 성공을 거두었다. 박 사장이 루사카 시내에 있는 자신의 세탁공장 프론트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박 사장의 아담한 사무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신 뒤 공장 구경을 나섰다. 두 번 째 건물로 들어서자 세탁기와 건조기 등 10여대의 기계들이 돌아가는 가운데 직원들이 분주하게 세탁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솔을 이용해 하얀 색의 액체를 세탁물에 바르고 있었다.
"기름이나 잉크, 페인트 등 잘 빠지지 않는 얼룩을 지우는 '전(前) 처리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세탁기에 넣기 전에 얼룩을 빼는 세제를 묻혀 일차 작업을 한 뒤 세탁기에 집어넣으면 깨끗하게 세탁이 됩니다. 잠비아에서는 우리만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박 사장은 루사카 세탁시장을 장악한 비결로 한국식의 꼼꼼한 세탁기술과 친절한 서비스를 꼽았다. 묵은 얼룩을 제거하는 '전 처리 과정' 뿐 아니라 세심한 다림질 기술과 보프라기 제거, 고객들에게 커피와 캔디 등을 제공하는 친절 서비스 등이 잠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어떻게 잠비아에서 세탁사업을 시작하게 됐을까. 세탁공장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그의 아내인 송명자(53)여사였다.
"잠비아에서 처음 시작한 사업은 안경점이었어요. 우리 안경점 뒷문으로 나가면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세탁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아내가 그곳에 실크 스카프를 맡긴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실크를 물빨래 하는 바람에 스카프가 못쓰게 된 겁니다. 선물 받은 비싼 스카프였거든요. 변상을 해 달라고 여러 차례 찾아갔는데 주인이 피해 다니면서 만나 주지도 않더라고요. 할 수 없이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이곳 아이들 세탁기술이 형편없는 것 같다, 한국식으로 세탁소 한 번 차려보자고 하더군요. 솔깃했어요. 세탁소 차리는 데 그다지 큰돈이 들어갈 것 같지도 않았고요."
곧바로 시장성 조사에 들어갔다. 박 사장 부부는 이웃 세탁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용돈을 집어주면서 세탁시장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손님이 몇 명이나 왔는지, 하루 매출이 얼마 정도인지, 손님들이 가장 많이 맡기는 옷이 무엇인지, 무슨 세제를 사용하는지, 세탁기는 어느 회사 제품인지 등을 물었다. 6개월 동안 차근차근 시장조사를 한 것이다.
"멋을 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엄청 멋을 냅니다. 이곳 남자들은 작은 구두 솔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구두를 닦습니다. 이곳 친구들은 구두도 닦고, 머리 손질을 하는 빗으로도 이용을 합니다. 여자들은 가발을 여러 개 지니고 있어요. 남자들이 넥타이 바꿔 매듯 가발을 바꿔 쓰면서 치장을 합니다. 특히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장을 차려 입는 걸 좋아합니다. 매주 교회를 갈 때는 말쑥하게 빼 입고 갑니다. 결혼식이나 파티에 갈 때도 정장을 하고 가지요."
시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안경점에 이어 세탁공장까지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정을 했다. 2006년 여름, 박 사장은 한국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대구에 있는 세탁기계 공장을 찾았다. 그곳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떤 기계가 필요하고, 어떻게 그 기계들을 세팅해야 하는지, 시설투자비는 얼마나 드는지 꼼꼼하게 체크를 했다.
"지금도 거래를 하고 있는 은성세탁기계라는 곳을 찾아 갔어요. 초기 투자비가 4500만 원 정도 들겠더라고요. 당시 가지고 있던 돈이 3500만 원 정도였습니다. 부족한 1000만 원은 벌어서 갚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군요. 물세탁기와 드라이클리닝 세탁기, 건조기 등 모두 13대의 첨단기계를 컨테이너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은성세탁기계의 기술자 한 분을 모시고 다시 루사카로 들어왔습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기계세팅을 마친 뒤 2006년도 10월 세탁공장 문을 열었습니다. 그 기술자는 3개월 동안 루사카에 머물면서 저와 우리 직원들에게 기계 사용법과 세탁기술을 가르쳐 주었지요."
1년 정도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차츰 다른 세탁소보다 월등한 세탁 솜씨는 곧 루사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꾸준히 늘었다. 2010년 안경점을 매각할 때까지 세탁공장과 안경점을 오가는 바쁜 생활이 계속됐다.
공장 뒤뜰에 있는 커다란 야외 테이블에 직원 10여 명이 둘러 앉아 빵과 음료수를 먹고 있었다. 휴식시간에 간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박 사장이 그들 사이로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는다. 박 사장이나 직원들이나 모두 편안해 보인다.
"현재 우리 직원들은 모두 28명입니다. 잠비아 최고의 세탁 기술자들이지요. 이 친구들 덕분에 제가 먹고 삽니다. 그만큼 대우도 잘 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업체보다 10% 이상의 봉급을 주고 있습니다. 성실한 친구들에겐 수시로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지요."
도쿄 론드리는 연간 100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박 사장은 앞으로 업소용 침구류와 대형 카펫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세탁공장을 추가로 세울 예정이다. 잠비아 경제가 발전하면서 호텔과 롯지 등 숙박업소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잠비아에 간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숙박료와 주택 임대료가 비싸다는 점이다. 특급호텔의 경우 하루 숙박료가 한국과 비슷한 20만~30만 원 정도를 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치안이 보장된 주택단지에 살기 위해서는 월 200만~300만 원 정도의 임대료를 들여야 한다. 숙박시설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훨씬 부족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박 사장은 잠비아의 빠른 경제 발전 속도를 살펴보고는 당분간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4000㎡(약 1200평) 정도의 땅을 사놓은 게 있었습니다. 처음 그 땅을 살 때는 우리 식구들이 살 집을 짓기 위해 산 것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살림집을 짓기에는 땅이 너무 넓더라고요. 안경점을 매각한 돈도 손에 쥐고 있겠다, 이참에 거기에 호텔을 짓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안경점이나 세탁업과 마찬가지로 박 사장은 건축업에도 문외한 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건축공사장을 쫓아다니며 현지 건축방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건축자재를 실어 날랐다. 특히 인테리어만큼은 한국에서 전문 기술자를 데려와 8개월 동안 마무리 작업에 신경을 썼다. 2011년 마침내 객실 20개에 식당과 바, 사우나 시설 등을 갖춘 멋진 호텔을 완공하면서 박 사장은 안경점과 세탁공장에 이어 호텔사업가로서도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호텔 개업을 하고 열 달 정도 직접 운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호텔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인도사람이었어요. 애착을 가지고 지은 건물이었고, 이제 막 호텔경영에도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즈음이었지요. 팔려고 하니 좀 서운한 맘이 들었지만, 흥정되는 값이 괜찮더라고요. 밀고 당기고 하다가 165만 달러에 팔았습니다. 건축비에 비하면 3배 정도는 남긴 셈이지요."
건축 사업에 맛을 들인 박 사장은 요즘 또 다시 상가를 짓는 일을 벌이고 있다. 신도시가 들어서는 길목인 무나리 저스몬딘 지역에 2640㎡(약 800평) 정도의 규모의 상가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무나리 지역은 작년 초에 상업지구로 바뀐 곳입니다. 도로변으로는 상가를 짓고, 뒤편으로는 오피스 빌딩을 올릴 계획입니다. 상가는 이미 60% 정도 공정율을 보이고 있어요."
그러나 박 사장은 무나리 지역의 상가나 오피스 빌딩 건축보다도 훨씬 큰 규모의 건축사업을 준비 중에 있었다. 루사카 북쪽 600㎞ 지점에 위치한 솔레지란 광산 도시에 대형 쇼핑몰 건설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 출신의 고위 정부 관료가 먼저 제안을 한 사업입니다. 자기가 부지 23만㎡(약7만평) 정도를 제공해 주겠으니 건축은 저보고 책임지라고 하더군요. 솔레지에 몇 번 답사도 다녀오고 타당성 조사도 해봤어요. 인구 10만 정도의 작은 도시였습니다. 또한 우리 돈으로 200여 억 원이나 되는 큰 돈이 이곳 광산 근로자들의 임금으로 풀려나가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버젓한 쇼핑몰이 하나도 없어요. 해볼 만 한 사업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광산 이야기가 나오자 박 사장의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잠비아는 세계적 구리 생산국일 뿐 아니라 금과 아연 등 광물 자원의 보고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그러고 보니 박 사장의 명함에 'KB&K Gold Mine' 대표란 직함도 적혀 있었구나! 박 사장은 안경점과 세탁공장, 호텔운영, 건설업에 이어 금광개발에까지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3년 전 쯤의 일이었어요. 한 때 이곳에서 구리광산으로 잘 나가던 권혁룡이라는 분을 알게 됐습니다. 대규모로 구리 물량을 확보했다가 국제 구리 가격 폭락으로 망한 분이었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인데 아이들도 다섯 명이나 두고 있더라고요. 워낙 처지가 어려워 보여서 이것저것 제가 도와드렸습니다. 그런데 2012년 봄 그분이 저에게 광산을 함께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더라고요. 자기는 광산탐사 허가증도 있고, 무엇보다도 경험이 있으니, 당신은 돈을 좀 대라, 이러더라고요.
이것저것 알아봤지요. 마침 미국 대학교수로 있는 동생이 루사카에 놀러 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꼼꼼하게 알아보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더니 자기도 지분 참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거지요. 그래서 저랑 권 사장이 각각 45% 지분을 보유하고, 나머지 10%는 동생이 갖는 것으로 해서 금광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11년 한국광물자원공사에서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매장량 몇 백억 원 어치 정도를 추산하더라고요. 많게는 몇 조 원 규모의 매장량까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광물자원공사로부터 약 2억 5000만원의 지원금도 받았어요."
언론인·오지여행가 sangjo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