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내수 늘려야 회복세 이어간다

2017-05-02 12:07:02 게재

반도체 등 내수 무관 업종만 호조 … 적극적 재정정책·사드 해결 등 새정부 과제

올 들어 수출과 설비투자가 크게 개선되고 있지만, 실물경기 호전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분석이다. 고용이나 내수와는 거리가 있는 반도체나 석유화학이 경기회복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타면서 불고 있는 '글로벌 봄바람'이 우리나라에서는 '특정산업의 반짝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2일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어 생산과 설비투자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내수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 회복세를 보이는 업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인 반도체와 석유화학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적극적인 재정정책 등 내수와 고용을 뒷받침할만한 정책이 있어야 현재 경기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수출·설비투자 개선되고 있지만 = 지난 연말부터 수출호조가 이어지면서 경기 반등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경제가 회복되면서 교역량이 늘고 수출호조→기업실적 개선→설비투자 증가의 성장 경로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경제 연구기관도 잇따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증시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연중 최고치를 다시 쓰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성장률이 2%대 초반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6%로 상향조정했다. 중국 사드 보복(-0.2%p)의 영향이 반영됐음에도 전망치는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이어 금융연구원(2.5→2.8%), 한국개발연구원(KDI, 2.4→2.6%), 한국경제연구원(2.1→2.5%) 등도 성장률 전망치를 올렸다. 민간기관인 LG경제연구원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높여 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7%를 제시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속보치는 0.9%를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0.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경기회복은 수출이 견인하고 투자가 떠받치는 모양새다. 1분기 수출은 반도체, 기계·장비 등이 늘면서 전기 대비 1.9% 증가했다. 2015년 4분기(2.1%) 이후 가장 높은 성장세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 투자를 중심으로 전기 대비 3% 증가했다. 건설투자는 5.3%나 늘었다.

주식시장도 기업 실적 개선을 반영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달 20일부터 6거래일 연속 상승해 2200선을 넘어섰다.

경기개선 어디까지 이어질까 = 하지만 최근 지표 반등 현상을 본격 경기개선 신호탄으로 보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생산·투자 회복세는 뚜렷하지만, 소비·고용 등 내수경기로 옮겨 붙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은 성장률을 상향조정하면서도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가계소득 증가로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는 최근 흐름 때문에 민간소비 증가는 제한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실제 1분기 서비스업 생산은 전 분기 대비 0.1% 증가하는데 그쳤다. 민간소비(0.4%) 증가율도 성장률의 절반에 못미쳤다. 소비 회복의 기준이 되는 비내구제나 서비스 소비는 여전히 저조한 상태다. 도소매·음식·숙박은 -1.2%, 문화·기타서비스는 -0.8%를 기록했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실업률은 4.2%, 청년실업률도 11.3%로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는 9개월 연속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수출 호조도 고용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반도체 수출액은 76억2000만달러로 전체 수출액에서 16%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반도체를 비롯한 IT업종은 내수나 고용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 수요가 10억원이 늘 때 창출되는 일자리 수를 뜻하는 '취업유발계수'가 반도체 업종은 3.6명에 불과하다. 전체 사업 평균은 12.9명이다.

금융연구원도 올해 고용 상황을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묶일 것'으로 내다봤다. 취업자수는 30만명 증가하고 실업률은 3.8%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금융연구원은 "올해 고용부문은 내수 부진으로 인력수요가 크지 않다"면서 "다만 정부의 보건사회복지 관련 지출 확대로 전년과 동일한 수준의 취업자 증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내수 여건도 불투명 = 내수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당장 하반기부터는 사드를 둘러싼 중국의 보복조치가 강화될 것이란 우려를 낳는다. 실제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서비스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1분기 서비스업 성장률은 전기대비 0.1%로 32분기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오는 10일 출범할 새 정부가 대중국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대목이다.

가계의 실질소득은 늘지 않고, 1400조원에 근접한 가계부채도 내수부진의 주요 원인이다. 1분기 민간소비는 전기대비 0.4% 성장했지만 지난해 2분기(0.8%)와 3분기(0.6%) 성장률과 비교하면 부진하다. 이마저도 국내보다는 국외소비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이 때문에 세계경기가 호조를 보이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세계경기가 하반기부터 회복의 힘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세계 경제의 생산성이 별로 높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성장 주도력이 떨어질 수 있고 유가 상승세가 멈추면 개도국 경기 회복세도 둔화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세계경기가 개선되고 있을 때 고용과 내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포함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구사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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