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외교, 유엔에서 카리브를 품다

2023-09-20 10:35:14 게재
조영준 카리콤 정부대표

카리브해는 대서양의 서쪽 일부를 구성하는 북미와 남미 사이의 바다를 지칭한다. 이 지역은 700여개의 섬과 암초들로 이루어진 군도이며 약 4400만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역사적으로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후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했으며, 콜럼버스가 인도에 도착했다고 착각한 당시 유럽인들의 무지로 인해 서인도제도로 불리기도 했다. 스페인 식민지로 편입된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수백 년의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쳐 1970~80년대 비로소 독립을 달성했다.

카리브 연안국까지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으로는 카리브 25개국으로 보기도 하나, 협의의 카리브 국가는 카리브공동체(카리콤)를 구성하는 14개국이다. 대다수가 인구 5만~50만명 사이의 소국이며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다. 국내에서는 카리브를 중남미의 일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 카리브는 중남미와는 다른 역사, 문화, 언어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대다수 국가들의 공용어는 영어이며, 인종적으로는 아프리카계 흑인이 다수를 이룬다.

국내에서 흔히 카리브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로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조장한 해적들의 활동 무대, 사탕수수가 재료인 세계 최고의 럼주 생산지, 특유의 코발트색 바다, 산호초와 은빛 모래의 해변 관광지 등을 꼽을 수 있다. 밥 말리로 대표되는 레게음악의 발원지, 우사인 볼트와 같은 세계적인 육상선수 등도 언급된다.

한국은 대다수 카리브 국가들과 1970년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교류협력을 발전시켜 왔다. 카리브 국가들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며, 다양한 계기에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지지해왔다. 카리브 14개국의 보팅 파워는 유엔 전체 회원국의 7퍼센트를 웃돌며, 이들은 대외문제를 공동 조율함으로써 집단투표권을 통한 영향력 증대를 모색해왔다. 우리 정부가 진출하는 주요 국제기구 선거에서 카리브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늘 중요하며, 당면 외교과제인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경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우리 정부는 카리브 역내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우리의 외교력을 신장하고자 최근 카리브 국가들과 양자관계 및 카리콤을 통한 다자차원의 교류협력 증진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국가별 특성을 반영해 기후변화, 해양과학연구, 산림협력, 전자정부, 의료, 직업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발굴 중이다. 또한, 카리콤 협력기금 확대 운용을 비롯해 기후변화, 에너지전환 등 카리브 국가들의 관심분야에서 협력 플랫폼을 구축해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7월 초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개최된 45차 카리콤 정상회의에는 정부 최초로 국무총리가 참석해 대카리브 협력 의지를 발표했다. 특히,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주간에 참석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카리브 여러 국가의 정상들과 연쇄 양자회담을 갖고 교류협력 증진방안을 논의하는 동시에,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지 교섭을 전개하고 있다. 아울러 외교부는 10월 초 카리브지역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해 '한-카리브 고위급협력포럼'을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카리브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협력 이니셔티브들은 한국의 대카리브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이 지역에서 우리의 외교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