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가능한 경우
재벌 총수, 유명 영화감독의 이혼소송을 통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유책배우자란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를 말한다. 우리 민법은 부정행위와 같이 법이 정한 이혼 사유(민법 제840조)가 있을 때에만 이혼이 가능하도록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유책배우자의 '재판상 이혼' 청구는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무시할 수 없어
그런데 우리 법원은 1980년대 후반부터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유를 판시해왔는데, 최근에는 그 예외사유를 확장하는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종래 판례에서 이미 허용해온 것처럼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판례는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했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고통이 점차 약화돼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를 특별한 사정의 예로 들고 있다.
가사법 전문 변호사로서 다수의 사례를 수행한 결과를 말하자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특히 '이혼 후 상대방 배우자의 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수준'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 양육과 교육 및 복지상황'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와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데 혼인계속의사가 진정한 것인가는 △별거 기간의 장단 △별거 기간 중 혼인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 여부 △소송절차 진행 중의 진술 내용과 태도 등 여러 요소에 의해 평가된다. 유책배우자의 적극적 조치가 없는 한 장기간 별거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책성의 상쇄를 인정받기 어렵다. 반대로 유책배우자의 상대방 배우자가 부부간 진지한 대화나 소통없이 피상적으로 혼인관계를 유지했을 때에는 유책배우자 측의 이혼청구가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
원치 않은 이혼, 높은 기준 위자료 지급
한편 최근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인용된 사건에서 '높은 기준을 적용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위 사안은 십여년 동안 부정행위를 한 남편이 두번의 이혼청구 소송 끝에 예외적으로 이혼이 인용된 경우에, 이혼이 확정된 지 약 2년이 지나 별도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1심은 전 남편에게 30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으나 2심에서 위자료 액수가 2억원으로 대폭 증액됐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2심 재판부는 '상당한 기간 이율배반적 행위를 통해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했다면 상대방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인용되는 경우로 국한한 것은 아쉬우나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없는 상대방 배우자가 받을 수 있는 위자료 액수를 그나마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위 판결에 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