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의 인도 톺아보기
인도, 중국의 길 따라가나
인도가 명실공히 '세계의 성장엔진'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글로벌과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인도가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2030년 세계 3위 경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 역시 올해 8월 인도 독립 76주년 기념사에서 5년 내로 인도 경제가 세계 3위 안에 진입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실제 2022년 인도 경제는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가 됐으며, 올해 6.3%의 경제성장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는 중국보다 1.3%p 높은 실적이다.
G20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경제에 글로벌 투자 자금도 몰리고 있다. 인도의 견실한 성장, 금융시장 개혁, 폭발적인 소비 증가는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조정과 같은 외부 동인과 결합돼 글로벌 펀드 매니저와 투자자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사모펀드(PE) 및 벤처캐피털(VC)이 위축되면서 세계 평균 투자액은 최대 30%까지 감소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인도에는 PE-VC 투자가 몰려 세계 3번째로 600억달러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 11월 말 인도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은 2020년 초 이후 2배 가까이 뛰어 4조달러에 육박했다. 그리고 홍콩 증권거래소를 제치고 세계 7위로 올라섰다.
집권시기, 권위주의화 등에서 닮아가
그런데 인도가 묘하게 중국을 닮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출 방식은 다르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은 2022년 10월 3연임에 성공했고, 모디 총리 역시 2024년 5월 3연임을 코앞에 두고 있다. 모디가 총리가 되기 전 구자라트주에서 13년간 주 총리(chief minister)를 하면서 인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이때 중국의 발전모델을 배우기 위해 광둥 상하이 등지를 4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통치한 햇수를 거듭할수록 더욱 권위적인 정부가 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2023년 프리덤하우스 발표에 따르면 인도는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 40%)와 시민자유(civil liberties, 60%)를 고려했을 때 '부분적으로만 자유로운(Partly Free)' 국가로 평가됐다. 정치에서의 민주적 절차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점수를 얻었을 뿐 △언론 △종교 △학문 △집회결사 △NGO활동의 자유 △사법부 독립성 등 시민자유 부분은 60점 만점에 33점 획득에 그쳤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의 2023년 민주주의 보고서도 지난 10년 간 인도의 민주주의가 지속 퇴보해 가장 권위주의화된 국가 중 하나가 됐다며 '선거제 독재국가(Electoral Autocracy)'로 규정했다. 여기서 인도는 군부의 실질적 통제 아래 놓인 파키스탄과 함께 하위 40~50%로 분류됐다. 미국 카토연구소가 올해 1월 발표한 '인권자유지수(The Human Freedom Index)'에서는 인도 순위가 2002년 78위에서 2020년 113위로 추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2002년 113위를 기록했다.
힌두 민족주의 앞세운 권위주의 정부
모디정부는 2014년, 2019년 두차례 총선 때보다 더욱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토대로 2024년 총선 승리가 거의 확실시된다. 지난달 말 조사에 참여한 인도인 중 78%가 모디 총리의 직무수행에 긍정평가를 내렸다. 인도의 대표 주간지 인디아투데이에서 매년 2차례 실시하는 지지도 조사에서도 인도국민당(BJP)이 이끄는 중도우파 계열의 정당연합 NDA가 과반의 지지율을 보인다. 특히 이는 기타 후진계층(OBC)과 힌두 민족주의 표층을 흡수한 데 따른 것으로, 인도의 정치지형이 지속되는 한 BJP의 승리는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런데 모디정부는 이같은 정치적 기반에 의지해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 권위주의 정부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인도 하원은 모디 총리와 같은 구자라트 출신 재벌그룹 아다니(Adani)를 신랄하게 비판한 야당 트리나물(Trinamool Congress)당의 마후아 모이트라(Mahua Moitra) 의원을 석연치 않은 비위 혐의를 들어 축출했다.
인도 내무부장관 아미트 샤(Amit Shah)는 인도 형사사법 제도의 개편도 주도하기 시작했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유래된 인도 형법(IPC), 형사소송법(CrPC), 인도 증거법(Indian Evidence Act)을 대체한다는 명목으로 올해 8월 11일 의회에 형사법 개정 법안 3종을 발의했다. 그중 바라티야 냐야 산히타 법안(Bharatiya Nyaya Sanhita Bill)에는 불법행동방지법 조항이 포함됐다. 이 조항은 명목상 테러지원 및 자금조달 처벌이지만 실제로는 카슈미르 지역의 언론 통제 등 정부의 공권력 강화에 이용돼 왔던 것이다. 인도에서 유일하게 무슬림이 다수인 카슈미르에 특별 지위를 부여했던 헌법 370조를 폐기한 이후 항의시위, 정부에 대한 언론 비판이 고조돼 왔던 터였다.
함께 상정된 바라티야 나가리크 수라크샤 사니타(Bharatiya Nagarik Suraksha Sanhita) 개정안은 일반 형법에 따른 경찰 구금의 최대 한도를 15일에서 60일 또는 범죄 성격에 따라서는 90일까지로 확대함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 구금 기간이 늘어나면 증거가 강요되고 조작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종교·부족의 분리주의 부추길 위험성
극단적인 힌두 민족주의와 권위주의 행태는 역으로 다양한 종교·부족 단체의 분리주의나 자치화 운동을 부추길 위험이 높다. 실제로 최근 무슬림들뿐만 아니라 1980년대 초까지 활발했던 시크인들의 분리독립 요구, 동부 지방에 국한해 활동했던 마오주의 계열의 무장단체 낙살라이트(Naxalite)운동 등도 다시 동력을 얻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리스크는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최근 캐나다와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9월 18일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에서 시크교 분리독립 지도자인 하르딥 싱 니자르(Hardeep Singh Nijjar)가 피살된 사건에 인도정부가 연루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주 인도 캐나다 외교관 추방 등 양국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거의 협상 완료 단계에 있던 캐나다-인도 FTA 협상도 무기한 중단됐다.
미국과의 관계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내년 1월 26일 인도 최대의 국경일인 '공화국의 날(Republic Day)' 행사에 주빈으로 참석할 예정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불참 통보를 했다. 이에 동 계기에 개최하려던 쿼드 정상회의도 연기되었다. 이 역시 인도정부가 미국 시민인 시크교도 암살 공작에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인도가 아무리 전략적 자율성을 극대화하며 어느 편을 들지 않는 다층적 제휴(multi-aligned)를 표방한다고 해도 현재의 국력, 특히 국방 역량과 지정학적 위치를 종합할 때 미국과의 협력에 무게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이 동맹과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대외전략으로 방향을 설정한 이상 미국의 우방국가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고속성장하는 경제에 대한 자신감으로 국민에 대한 두려움을 망각하고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그르친다면 급상승하던 각종 인도 경제지표의 성장엔진도 조기에 식어버릴 수 있다. 인도가 자랑하는 청년 인구와 혁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도의 전통을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