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창간 22주년 기획 제조업이 국가경쟁력이다(중)

규모의 경제 이룬 대기업,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2015-10-20 12:43:00 게재

10% 개선보다 10배 혁신 … 범용 탈피하고 전문·정밀 추구

한국 제조업은 '양의 비즈니스'를 고집할 것인지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으로 탈바꿈할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싸고 빠르게 만드는 규모의 경제, 양의 비즈니스 전략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게 됐다.

그동안 한국은 울산 여수 등 대규모 산업단지를 형성하고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erㆍ발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우리는 선진국이 이미 검증을 마친 '개념설계'를 빠르게 확보해 우리 것으로 만들고 생산에 적용하는 데 경쟁력이 있었다"며 "하지만 경험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아 핵심부품소재나 새로운 제품 정의도 산업선진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등 개도국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고 고부가가치 개념설계 영역에서는 우리와 선진국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경제계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ㆍ시장 선도자)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쏟고 있다.

반도체, 기술혁신으로 '한계돌파' = 국내 제조업 가운데 세계 1위를 얘기할 때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 산업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세계시장의 70%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에서 1993년 점유율 세계 1위에 오른 이후 2014년까지 22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가 22년간 세계 1위를 지킨 배경에는 기술의 한계를 창의적 아이디어로 돌파한 데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세계 최초로 20나노 D램을 양산하며, 2년 가까이 멈추어 있던 미세공정의 한계를 돌파했다.

삼성전자는 장비교체 없이 기술혁신만으로 20나노 D램 양산에 성공했다. 20나노 D램은 현재 삼성전자만이 유일하게 양산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에서 '한계돌파'를 이뤄낸 사례로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도 있다.

삼성전자는 2013년 업계 최초로 기존 평면 구조 반도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3차원 수직구조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성공했다. 3차원 수직구조 낸드플래시 개발은 미세공정이 10나노급으로 진입하면서 전자가 누설되는 간섭현상이 나타나는 등 미세화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다다랐다는 업계의 평가를 한꺼번에 무너뜨린 기술혁신이었다.

LG디스플레이 65인치 곡면 UHD OLED TV. 사진 LG디스플레이 제공


한국, 차세대 디스플레이 선점 = 지난해 대형(9인치 이상)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국내 기업인 삼성·LG디스플레이는 출하 제품 면적 기준으로 47% 점유율을 차지했다. 중국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2013년에 비해 조금 점유율이 떨어졌지만 절대적인 강세는 유지한 것이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2002년 일본을 추월한 후 13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1995년부터 시작됐다. 이후 '위기다'라는 시장의 흐름이 있을 때 오히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일본 대만 등의 공격을 물리치고 1위를 지켜왔다. 삼성과 LG의 치열한 경쟁도 세계 1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1위 수성을 낙관할 수 없는 것이 최근 상황이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투자가 무서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 차이를 유지하고 있는 분야가 유기발광다이오드(올레드, OLED) 패널이다. 올레드는 액정 자체가 자체발광하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필요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차세대 디스플레이라 불린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소형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TV에 주로 사용되는 대형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LG디스플레이는 TV용 올레드 패널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대화면 올레드TV는 5~10년 뒤에나 출시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LG는 2013년 세계최초로 55인치 올레드TV를 출시했다. 여기에는 바로 '10% 개선보다 10배 더 큰 혁신에 집중한 문샷씽킹(Moonshot Thinking)'이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소형 올레드를 건너뛰고, 곧바로 대형 올레드를 개발하겠다는 비전을 세운 것이다.

안병철 LG디스플레이 전무는 "10%의 발전이 아니라 두 배, 세 배의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와 방법으로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독자기술로 고기능성 합성수지 개발 = LG화학이 최근 고흡수성 수지(SAP)를 시장선도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나선 것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다.

값싼 원료를 기반으로 한 중국과 중동 등의 도전을 받고 있는 한국석유화학은 범용제품보다는 전문·정밀 제품 개발과 생산에 나선 것이다.

SAP 1그램은 최대 500그램의 물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흡수력이 뛰어난 합성수지다. 고도의 생산기술이 필요해 독일 애보닉 바스프 일본촉매 등 소수 선진화학기업들만이 생산해왔다. LG화학은 2004년부터 10년 동안 연구 끝에 국내 최초로 SAP의 원료인 아크릴산 촉매와 제조공정 기술까지 모든 공정을 순수 독자기술로 개발해 선진업체와 어깨를 겨눌 수 있게 됐다.

SK종합화학이 세계 2위 화학업체인 사우디의 사빅과 손잡고 고성능 폴리에틸렌 사업에 뛰어든 것도 범용제품 위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효성의 스판덱스 생산공정.사진 효성 제공

섬유산업을 고수익 현금창출산업으로 = 효성의 올 2분기 영업이익 2550억원은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이다. 효성의 호실적은 세계시장 1위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의 활약이 컸다.

효성은 1992년 국내 최초로 스판덱스 자체 개발에 성공한 이후 20년만에 이 제품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섬유산업을 고수익의 현금창출산업으로 바꾸었다.

이 제품은 중국 베트남 터키 브라질 등 세계에 구축된 생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효성은 2000년대 중반 중국 시장의 저가 제품 물량 공세로 스판덱스 사업자들이 잇달라 도산했던 시기가 있었다. 효성은 가격보다는 차별화 기능성 제품 개발에 매진해 경쟁사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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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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