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3주, 민간에 불어닥친 후폭풍

10월 첫주 화훼 경매액 30% 줄어

2016-10-19 10:21:59 게재

화훼농가·유통업자·꽃집, 타격 … 운동회때 음식물 금지 "김밥도 숨어서 먹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3주째 민간분야에 미치는 후폭풍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결혼과 축제의 계절인데 꽃 주문은 뜸하다. 학생이 선생님께 달아 주는 카네이션도 불법이라는 권익위원회의 해석이 나오면서 화훼농가와 꽃집은 더욱 참담한 심정이다. 한우식당에는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 김영란법 시행 후폭풍으로 민간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경조사·선물용 꽃 주문 '뚝' = 18일 경기도 고양시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당일부터 화훼단지 내 관엽식물 판매 물량과 판매가격이 50%이상 급락했다. 한국화훼농협에서 운영하는 경매장의 난 경매 유찰률은 청탁금지법 직전 11% 수준에서 법 시행 후인 이달 초 68%까지 증가했다. 선물용으로 곧잘 팔리던 관엽식물의 최근 농가 출하가격은 2만원대 중반에서 1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고양시 관계자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훼 소비량의 70~80%가 경조사용으로 소비되고 있어 국화와 장미 생산농가들의 타격이 극심하다"고 분석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종석 의원(새누리당·비례대표)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0월 첫째 주 화훼 경매물량은 지난해 같은 때보다 20% 감소하고 거래액은 30% 줄었다.

꽃 유통업을 하는 도매업자나 꽃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애가 타고 있다. 지금까지의 매출감소는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영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전국적인 체인망을 운영하는 중대형 꽃 유통회사 관계자는 "난의 경우 승진 축하용 선물로 많이 팔렸는데 관공서 등의 인사이동이 있어도 주문은 뚝 끊긴 상황"이라며 "지난달 말 이후 매출은 40% 정도 급감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격을 낮춰서라도 영업을 가능하게 하려고 조율을 하고 있지만 꽃이나 나무의 기본 가격과 배송비 등을 아무리 따져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소규모 꽃집들의 피해도 마찬가지다. 종로에서 30년간 꽃집을 운영해 온 한 꽃집 사장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본격적인 인사철에도 난이나 꽃 선물 주문이 들어오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신촌에서 20년간 꽃집을 운영한 한 사장은 "김영란법이 공직자들의 부패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법이긴 하지만 화훼농가와 꽃집 등에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공무원들은 접대를 안 받으면 그만이고 그들에게는 피해가 없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생각에 속이 상한다"고 한숨을 지었다.

한정식 법인카드 이용액 18% 줄어 = 한우 식당들의 매출도 크게 줄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으로 한우전문식당의 매출은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22.1% 감소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임의로 20곳의 한우전문식당을 조사한 결과 고급식당 9곳의 매출은 25.7%,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정육식당 11곳의 매출도 19.3%나 감소했다.

식당업은 특히 일식과 한식집이 타격을 입고 있다. 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일식업 매출이 12%, 한식업 매출이 5% 정도 줄어들었다. 이는 카드결제액에서도 드러난다. BC카드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직후인 9월28~29일과 한달 전인 8월31~9월1일간 법인카드 이용액은 요식업종은 8.9%, 주점업종 9.2% 각각 감소했다. 이중 한정식집 법인카드 이용액은 17.9% 줄어 감소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의 후폭풍에 대한 문제는 국민권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김 의원은 10일 "권익위는 한국경제연구원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경제적 영향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주무부처가 제도설계와 집행의 문제에만 매몰돼 경제·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충분한 고려나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점은 매우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급격한 내수위축과 경기침체에 대비, 다른 부처와 적극 협조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고양을) 또한 "축산·화훼농가 등 1차 산업 종사자의 걱정이 많으므로 법이 소프트랜딩(연착륙)할 수 있도록 법 영향평가와 관련한 실질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부모에 '음식 싸오지 마라' 통신문 = 한편 김영란법의 후폭풍은 비경제적 부분에도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은평구의 o 초등학교에선 최근 운동회를 하며 물 이외 간식을 못가져오게 금지해 본의 아니게 아이들이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쫄쫄 굶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교측이 혹시라도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간식을 보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논란을 피하기 위해 당사자가 먹을 음식도 못 가지고 오게 금지령을 내리면서 생긴 일이다. 학교측은 학부모에게 '행사가 끝난 후에 음식물을 먹으라'는 통신문을 보냈다. 한 학부모는 "김밥을 싸서 한 알씩 몰래 먹였다"며 "아이는 선생님이 무서운지 먹지 않으려고 하더라"고 밝혔다. 또다른 한 학부모는 "우리 애 학교만 그런 줄 알고 주위에 알아보니 다른 학교도 그런 곳이 있었다"며 "교육청에서 지침이라도 내려온 건지 학부모들끼리 궁금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교와 연구원에서는 때 아닌 사전검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김영란법상 '공직자 등'에 교사가 포함되면서 교수들은 외부강의 등을 나갈 때 미리 신고할 뿐만 아니라, 돈을 받지 않는 인터뷰나 행사참여 등도 사전 신고하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 국책연구원의 연구원은 "사례금을 받든 안 받든 모든 외부활동을 보고하다 보니 기관장과 정치성향이 다른 단체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는 등 사전검열 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면서 "공무원이 외부 강의하는 것을 규제하는 게 법조항의 주된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자유롭게 학문을 전파하는 게 본업인 교수나 연구원들까지 옭아매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김형선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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