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재벌 봐주기, 정경유착 키웠다

2017-01-17 10:57:04 게재

뇌물 집행유예 53%

사면권 제한도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부회장이 재벌총수 점유물인 '유전무죄' 공식을 이어갈 것인가, 18일 열리는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의원단과 당원들이 2016년 12월 6일 오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전경련 해체, 정경유착 척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유전무죄'는 1988년 10월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며 외친 말로, 정경유착의 필연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내일신문 설문조사에서 경제전문가들은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서는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22.9%)고 입을 모았다.

참여연대는 "정경유착은 국가권력의 사유화"라며 "소수 경제기득권 세력은 뇌물로 국가를 동원하고 정치권력은 그 대가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하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로 죄책이 중하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해석하면 재벌기업의 뇌물공여와 횡령범죄를 엄하게 벌하면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벌강화론'의 배경에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공식을 깨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경유착의 연결고리인 뇌물공여와 횡령범죄에 유난히 집행유예 선고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뇌물공여죄 형량은 기본 2년 6월~3년 6월이다. 집행유예 요건을 들여다보면 '수뢰자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대부분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줬다"는 수동적 태도를 보인 점도 이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집행유예형이 뇌물공여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양형위원회가 뇌물죄 양형 공청회에 제출한 뇌물공여죄 선고내역에 따르면 △실형 17.3% △집행유예형 53.8% △벌금형 28.8%로 나타났다.

뇌물을 주기 위해서는 비자금을 조성해야 하는데 횡령범죄가 반드시 뒤따른다. 하지만 업무상횡령죄 역시 실형이 26%, 집행유예가 54%를 차지하고 있다. 횡령범죄 양형 기준에도 '사실상 압력에 의한 소극적 범행'은 집행유예의 중요 요소다.

국회에는 '집행유예 금지법'까지 제출됐다. 횡령배임죄 등에서 횡령액이 5억원 이상일 때는 형량을 징역 5년 이상으로 높여 아예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3년 이하 징역형은 집행유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광온 의원은 이 법안을 소개하며 "정경유착을 뿌리뽑으려면 재벌 총수와 상류층의 경제범죄를 근절하는 '유전유죄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들어 '유전무죄'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일부 재벌 총수들은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력은 특별사면권을 행사해 재벌총수에게 다시 면죄부를 주고 있다. 2015년과 2016년 최태원 SK회장과 이재현 CJ회장이 받은 '단독사면'은 정경유착 연결고리로 뒷거래 의심을 받고 있다.

박경수 변호사는 "정경유착을 끊기 위해 처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조금씩 처벌이 강화되는 분위기지만, 처벌 수위를 높이더라도 대통령이 사면권 등을 행사해 또 다시 면죄부를 주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사법개혁 으로 강력하게 이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내일신문이 교수, 민간·정부연구원, 변호사, 회계사, 시민·경제단체 관계자 등 경제·경영 관련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전화 또는 이메일을 이용해 진행했다. 응답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성향에 대해 보수 16%, 중도 50%, 진보 30%라고 답했다. 무응답은 4%였다. 이 같은 정치성향은 내일신문과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이 매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례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정치성향과 비슷하다. 19세 이상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의 정치성향에 대해 보수 18.3%, 중도 44.0%, 진보 24.4%라고 답했다. 13.3%는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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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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