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날선 화두 '여성혐오' ①
어릴수록 여성혐오에 공감, 대책은 '걸음마'
정부 주도 예산투입 방식으론 한계 … "지역사회와 함께한 인식변화 필요"
'여성혐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관 주도가 아닌 지역사회 차원의 '말 걸기'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 전반에 깔린 인식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 문제인 만큼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투입하는 식으로는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10년간 100조원이라는 예산을 쓰고도 해결하지 못한 '저출산 대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0조 투입에도 실패한 저출산 정책 전철 밟을까 걱정"=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혐오 문제는 예산 얼마를 투입해서 몇 년 뒤에 효과가 있냐, 없냐는 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주거문제 해결을 제시했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애를 낳지 않은 것처럼 여성혐오 문제도 마찬가지"라며 사회 인식의 변화를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성평등을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그에 비해 더디면서 좌절감이나 불만 등이 쌓이면서 몰래카메라나 젠더폭력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기에 잘 발달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이 본인의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주어진 것도 여성혐오 현상이 급속도로 퍼진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여성을 '김치녀'와 '개념녀'로 분리해 표현하는 등 여성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혐오를 나타내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남성의 삶에 대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3.7%가 여성혐오표현을 온라인상에서 접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5세이상 35세미만 청소년 및 청년층 남성 1200명과 여성 300명 등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혐오 표현에 공감하는 정도가 남성이 54.2%로 여성(24.1%)보다 약 2배 이상 많았다. 더 큰 문제는 혐오표현에 공감하는 정도가 어릴수록 높다는 점이다. 남자 청소년은 66.7%가 여성혐오표현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수치만 봐도 여성혐오 현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혼보다 기혼 남성이 성역할 갈등 더 높아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위계적 젠더의 이분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여성혐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송인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강사양성부장은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빌딩 화장실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누적되어 온 성차별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여성혐오는 성차별의 다른 이름이자 현상적인 부분인 만큼 근본적인 원인이 극복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
'남성의 삶에 대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역할 갈등 지수는 미혼(4점 척도에 2.43점)보다 기혼 남성(2.62점)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득구간에 따라서 성역할 갈등이 큰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월소득이 200만~300만원 구간에 있는 남성은 감정표현에서의 갈등이 크게 나타났다. 300만~400만원 구간의 남성은 가족 부양과 성공 권력 경쟁에서의 성역할 갈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여성혐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필요한데, 이는 좀 장기적인 과제라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지역사회 풀뿌리 네트워크를 활용해보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풀뿌리 네트워크 시스템은 이미 잘 구축되어 있으니, 여기에 남성을 넣는 일만 하면 된다"며 "지역사회 차원에서 남성 자조그룹 만들기 등의 방식으로 남성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고 불만을 함께 공감,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식으로 사회가 계속해서 이들 집단에 대해 '감성적인 말 걸기'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시대 날선 화두 '여성혐오''기사]
▶ ① 어릴수록 여성혐오에 공감, 대책은 '걸음마' 2017-09-21
▶ ② 온라인 여성비하 표현 확산 '심각' 2017-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