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 무고로 보복당하기 일쑤

2018-03-08 10:33:55 게재

여성차별 축소판 '직장내 성폭력'

가해자 절반 '권력 관계' 윗사람

#1. 한 외국계 자동차회사 직원 A씨. 그는 2013년부터 1년여간 직속 상사인 B팀장으로부터 상습적이고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웠던 A씨는 2014년 초 회사를 그만 두기로 작정했다. 성희롱 당한 사실을 안 담당 임원이 "성희롱이 있었다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그만둬야 한다"며 퇴사를 만류했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며칠 뒤 회사 태도가 돌변했다. '여자(A씨)가 먼저 유혹했다', '만남에 동의해 놓고 이제 와 무고한 사람(B팀장)을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등등. 이상한 소문이 돌았고 퇴사를 만류했던 그 임원이 소문을 들먹이며 A씨에게 퇴사를 종용했다. 기가 찼다. 괘씸하고 억울해 버텼다. 동료의 도움을 받아 외부에도 알렸다. A씨 성희롱 사건은 두달 만에 B팀장에게 '정직 2주' 처분을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충격적인 일은 그 이후 벌어졌다. 회사측은 A씨를 전문업무에서 서무업무로 배정했다. 부당한 인사였다. A씨를 도왔던 직장동료 C씨 역시 'A씨와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를 받은 뒤 직무정지·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보복성 인사였다. 참다 못한 A씨는 대표이사와 퇴사를 종용한 임원(이사), 인사팀장, 가해자를 상대로 '인사조치가 부당하다'며 민사소송을 냈다. 2017년 12월 3년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겨우 '회사가 부당한 조치를 내렸다'는 대법원 판결을 얻었다.

#2. 2017년 한 인테리어 업체에 취업한 D씨. 입사 후 첫 회식에서 그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회사 간부 E씨가 회식 중 술에 취한 D씨를 근처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일주일 뒤 이 간부는 "대화를 하자"며 D씨를 다시 불러 냈다. 사과를 위한 자리인 줄 알았던 D씨. 또 다시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한 뒤 회사 대표에게도 피해사실을 알렸다. 회사는 공식적인 조사는 커녕 충격에 빠진 D씨가 한동안 출근을 못하자 '회사를 나가라'며 압박했다. 잘못을 시인했던 가해자 E씨도 "D씨가 오히려 원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D씨는 두 번째 성폭행을 당한 사흘 뒤 경찰에 재차 신고했다. 그러나 회사가 방치한 2~3주 사이에 상황은 불리하게 뒤바뀌어 버렸다. D씨는 입사 한달 만에 사표를 냈다. D씨는 지난해 10월말 이런 사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려 서지현 검사보다 앞서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를 했지만 되레 '꽃뱀'으로 몰리는 등 2차 피해를 당했다. D씨는 회사 간부 E씨 등을 상대로 형사고소 할 예정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내놓은 '2017년 상담통계'를 보면 지난해 직장 관계에 있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 상담은 375건으로 전체 1260건의 29.8%를 차지했다. 피해자-가해자 관계로 따질 경우 가장 많이 일어나는 유형이다. 그만큼 직장내 성폭행이 잦다는 얘기다. 여성 부하직원이 피해자고 남성 상사가 가해자인 경우가 절반(188건, 50.1%)에 달한다. 대부분의 회사는 이미지 따위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기를 꺼린다. 진상조사보단 은폐, 축소부터 시도한다. 피해자 인권이란 없다. 퇴사까지 종용 받는다. 꽃뱀으로 몰리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한국여성민우회 2014년 상담사례만 봐도 그렇다. 직장내에서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는데도 되레 불이익 조치를 받은 상담자가 전체 성폭력 상담자의 36%에 달했다. 유사한 통계는 또 있다. 한 생활용품기업의 여성노동자 53% 이상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으며 72%가 피해 상황에 순응했다. 성희롱에 대한 기업 대응 시스템을 절반 이상이 신뢰하지 않았고 불응했을 때 고용상 불이익을 겪었기 때문이다.

여성계가 직장내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축소판'으로 보는 이유들이다.

성폭력상담소 측은 "직장내 성폭력 피해는 직급이 낮은 비정규직, 저연령 여성에게 주로 일어났지만 이젠 고연령, 관리직, 전문직까지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모든 일터에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 기업과 사회가 대책마련을 위한 노력 대신 책임을 피해자에게 되묻는 행태는 당장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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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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