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계기로 성폭력 없는 사회를 ⑫
2차피해 두려움에 의료계는 잠잠?
대학·병원 도제관계·순혈주의에 피해자들 희생
'의료인 간 성폭력·괴롭힘 면허정지' 법안 추진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사과, 각종 협회·단체들의 후속 조치와 미투 지지 성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적 관심이 사라진 이후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내일신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 변화의 필요성을 짚는다. <편집자주>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운동이 우리나라 전 직종에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유난히 상대적으로 의료계는 잠잠하다. 의료계는 지난 3월 의사협회장 선거기간 당시 의료계의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 탓에 성희롱 등 성폭력문제들이 불거져 의료계 명예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아직 적극적인 폭로성 미투 활동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의료계 내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외부에 알릴 경우 의사 집단 내에서 따돌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실시한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 여자 전공의 631명 가운데 48.5%가 성희롱을, 16.3%가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와 관련 활발한 미투 활동은 드물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인 간의 성폭력과 괴롭힘을 개인의 인권침해뿐만 아니라 환자의 진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인간 성폭력과 괴롭힘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면허를 정지하는 조치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의사집단 따돌림' 극복할 용기와 지지 필요 = 의료계는 대학 교육과정이 도제식이고 그 관계가 병원 취업까지 이어지는 맹점으로 인해 성폭력을 외부에 밝히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의사·한의사·치과의사들은 대학 6년을 같이 수업을 받고 시험을 치룬다. 이 때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려면 교수들로부터 '유급'이라는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수련의 시절에는 대부분 출신대학 부속병원에서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선배의사나 교수의사의 눈 밖에 나는 '성폭력 폭로' 같은 행동은 취업에 결정타를 맞을 수도 있다. 2016년에는 인하의대에서 남학생 21명이 여학생들을 성희롱해 무기정학 등을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는 징계효력정지 신청이 받아져 피해자 여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 해임된 양산부산대병원 교수는 언론에 밝혀지기 전 수 년 동안 여전공의들을 성추행하고 성희롱했다. 지난해 10월 강남세브란스병원 회식자리에서 한 전공의가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회식 자리에 있던 여교수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등 동료들의 지지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1차 피해 이후에도 수년간 2차 피해를 당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조종남 여의사회 의권위원장은 "의료계는 남성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성폭력 문제는 여성을 비하하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제 시대도 변했으니 의사사회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 예방·처벌 강화해야 = 현재 의료계의 폭로성 미투운동이 미진하지만, 서지현 검사의 과거 성추행 폭로가 있기 전 의료계 여의사들은 먼저 나서 '의료계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예방활동을 진행했다.
여의사회는 지난해 9월 28일 2017년 대한민국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에서 의료계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를 '의료기관에서 양성평등의 현재와 미래'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같은 시기 유사한 연계활동을 한 여한의사회와 여치과의사회는 지난 1월30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공동성명에는 "그녀의 인터뷰에 공감의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며 "술자리에서 신체적 접촉을 해오던 대학원 지도교수 때문에 고통받던 동료의 눈물을, 단체 카톡방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과 동영상에 대한 지적을 했다가 오히려 사회성 떨어지는 인간으로 공격당하던 친구의 고통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한의사회와 여치과의사회는 "의료계를 비롯한 모든 사회의 조직에서 성폭력이 사라지고,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문화적 개혁의 촛불, 아니 횃불로 만들어 나가는데 여성의료인들은 진심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곽정민 여치과의사회 정책이사는 "협회 집행부가 새로 출범하게 되면 대학생들을 포함해 치과의사에게 양성평등적 관점에서 차별문제·성폭력예방활동을 진행하고, 여의사회가 실태조사를 하거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의사협회는 여한의사들이 사회진출에서 당하는 성차별들 유형들, 성폭력 사례들을 조사 연구하고 있다. 또 인도주의의사협회 여성위원회는 의사사회 내 성폭력 성차별 문제에 적극적 목소리를 내고 피해자를 위한 지원 활동, 성폭력예방 예규를 마련하기로 했다.
한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과 병원 내 예방교육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조 여의사회 의권위원장은 "같은 동료로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가해행동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는지,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등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은혜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고양시병)은 2월 5일 의료인이 직무와 관련된 의료인에게 폭력과 폭언, 성희롱, 성폭력 등을 행사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된 경우 의사면허 자격을 정지시키는 조항을 신설한 '의료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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