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임금피크제를 바꾸자│②합리적 대안 마련 시급

"직장생활, 굵고 짧게 아니라 가늘고 길게"

2018-05-09 11:16:18 게재

정년연장법서 의무화한 '임금체계 개편' 사문화 … "공공부문부터 임금수준과 내역 공개해야"

정년을 몇년 앞두고 기존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다. 대부분 정년이 57~58세이던 2000년대 초반, 금융권을 중심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 직전 3~5년간 임금을 양보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이 제도가 2016년부터 시작한 '정년 60세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임금피크제의 존속이 도마에 오르면서 대안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연공급적 호봉제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사양측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고령화사회에서 일자리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사는 물론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일명 정년연장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법 제19조 1항)고 강제한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과 금융, 대기업 등은 고연령 근로자의 정년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희망퇴직 등을 통해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 하고 있다.

문제는 정년연장법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하도록 강제한 조항은 사문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 법에는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은...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법 제19조의 2. 제 1항)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은 여전히 기존의 임금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사업체의 호봉제 도입 비중은 60.2%로 2015년(65.1%)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대세는 호봉제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융산업은 91.8%의 사업장이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봉제는 연공급을 기초로 하고 있어 근속기간에 따라 급여가 자동으로 인상되는 임금체계이다. 이에 따라 근속연수가 길어지면 급여가 급격히 상승하는 구조여서 기업들은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금융권 관계자)는 지적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근속년수가 늘어날 수록 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유로15개국은 입사 1년차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10년차가 되면 각각 212.3(한국), 165.9(일본), 145.4(유로)로 격차가 벌어진다. 30년 이상이 지나면 한국(328.8)과 유로(169.9)는 거의 두배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고연령·장기근속자에 자동으로 임금이 과도하게 지급될 경우 기업은 물론 근로자의 안정적 일자리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지금까지는 굵고 짧게 직장생활을 했다면, 앞으로 고령사회에서는 가늘고 길게 직장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며 "업무의 성격이나 노동의 강도를 무시하고, 20년 일한 사람이 5년 일한 사람보다 2배 이상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 호봉제를 대체할 임금체계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직무급이나 직능급, 성과연봉제 등 다양한 성격의 급여체계가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확산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이러한 실태에 대해 노동운동의 문제도 지적하지만 그동안 기업이 합리적인 평가시스템에 기반한 직무급 등의 개발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노사, 노사정 차원의 다양한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규식 원장은 "중장기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하지만, 단기적으로 임금공시제도도 검토할만 하다"면서 "기재부 알리오 시스템을 더 강화해서 공공부문의 임금체계나 내역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리면 임금수준에 대한 자연스러운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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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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