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아동보호체계 ④

아동학대 예방교육 부실한 조직운영 … 부모교육은 '형식'

2019-04-17 11:44:08 게재

"속으로 울음 삼키는 아이 느는데 설계도만 그리는 정부와 시도교육청"

학부모교육, 불참해도 그만 …실행력 없는 교육정책 매년 도돌이표

아동이 태어나 온전히 성장하기까지 한 사회가 개입하는 모든 과정을 아동보호체계라고 할 수 있다. 출생신고부터 돌봄·교육 등 아이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여기에 포함되지만 한 사회의 아동보호체계 민낯을 드러내는 부분은 아동학대다. 지난 해 전국에서 부모나 양육자에게 학대를 받아 숨진 아동은 최소 25명이다. 2017년 38명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한 달에 2명 이상이 잔인한 폭력에 스러진다. 계속 이래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의 아동보호체계를 살피고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강원도 원주 한 초등학교. 수업이 끝났는데 아이들은 집에 가려 하지 않는다. 이유는 학교가 집보다 더 편하고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집에 가면 아무도 없어요. 심심하고 먹을 것도 없고요." 2학년인 진수(가명)는 학교에서 밥 먹고 잠도 잤으면 좋겠다며 웃는다. 진수가 1학년에 입학했을 때 글은 읽지 못했고 인지능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몸에서 심한 악취가 풍겼다. 아이들은 진수를 멀리했다. 담임교사는 진수가 지능에 문제가 있는지 각종 검사를 했다.

다행히도 지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가끔씩 멍 자국도 보였다. '아동학대'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어렵게 진수 집을 방문했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신발을 벗어야 할지, 신고 들어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머리를 감기고 밥을 챙겨줬다. 읍사무소와 사회복지사 도움도 받았다. 1년 넘게 미술치료와 상담, 기초학습 지원을 했다. 진수 부모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부모교육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 집에는 꼭 찾아갑니다. 우선 부모님 상담과 주변 환경을 정확하게 알아야 제대로 된 진단을 할 수 있거든요." 담임교사는 학습부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진수는 서서히 학교생활에 적응해갔다.

하지만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 모두가 진수처럼 담임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아동학대 의심이 들면 교사는 해당기관에 신고하면 끝이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예방교육뿐이다. 문제는 학부모들의 참여여부다. 아동학대 의심을 받는 학부모 대부분은 사회적·경제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ㅎ초교 교사는 "숨죽여 울음을 삼키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며 "아동학대는 학교에서만 관리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힘든 일"이라며 "관련 부처와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 후 1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앞에서 어린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 '어쩌다 어른'이 된 학부모가 자녀학대= 아동학대 예방과 근절 방안은 범위가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학대이고 어디까지가 훈육인지 부모들은 잘 알지 못한다. 최근에는 콩쥐팥쥐나 장화홍련전, 신데렐라 같은 동화 속 학대를 넘어섰다. 폭력 학대 방임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되었지만 아동학대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를 비롯한 시도교육청은 "아이를 하나의 고귀한 생명으로, 인격체로 존중하는지 여부가 아동학대 예방교육의 핵심"이라며 다양한 근절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예방정책은 신체적 폭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아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방임상태에 놓인 아이들은 중고생이 되더라도 학대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 성적 대인관계 소외 영양공급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면 아동학대로 봐야 한다.

정부가 학부모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가해자 10명 중 8명은 친부모나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자식 내가 훈육한다는 데 왜 상관하느냐"는 일반적인 부모들의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친권자나 보호자 이름으로 학대를 할 경우 외부 시선은 더욱 차단된다. 여기에 낙후된 사회보장제도는 폭력을 대물림하는 데 일조한다. '어릴 때 맞고 자란 놈이 어른이 돼서 자식 때린다'는 말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중학교 3학년 진호(서울. 가명)는 학교폭력자치위 결정에 따라 전학을 갔다.

또래 아이들에게 자주 주먹을 휘둘렀고 금품도 빼앗았다. 상습폭력에다 반성 기미도 부족하다는 게 학폭자치위의 결정이다. 진호 역시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한테 골프채로 맞고 자랐다며 가슴 흉터를 보여줬다. 진호는 혼자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카센터운영해서 돈벌어주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학원 열심히 다니라는 훈계만 들었다고 말했다. 분명한 건 어릴 때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 대부분은 중고생이 돼서도 학폭 가피해자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Wee센터나 Wee스쿨에 상담을 한 학생 대부분은 가정불화로 인한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연(가명. 서울 노원구 중2)양은 숲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연이는 에코가방 만들기에서 가방에 큰 글씨로 심한 욕설을 썼다. 큰 나무 아래에는 검은색 물감으로 작은 사람을 그렸다. 자신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미술치유 강사는 "힘들고 답답한 일이 많았지?"라며 "솔직하게 표현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잠시 후 기연이는 노란색 물감으로 욕설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강사는 "상처 난 마음을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틀이 지나자 아이들은 '못해요'라는 말대신 '우리'나 '해볼게요'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기연이는 '둘이 있으면 외로움이 1/1000로 줄어들어요'라고 썼다.

학교에서 위기학생으로 분류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어릴 때 학대를 당했다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와 치료다. 미술 음악 놀이 숲치유 등 최근 치유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시행중이다. 그러나 학사일정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형식에 그치고 만다. 교육부도, 시도교육청도 지속가능한 치유와 치료를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교육부가 추진하는 아동학대 예방 정책을 들여다보면 초중등 전체에 대해 취학 전 소재파악과 안전 확인이 전부다. 2016년 10월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아동학대 처벌수위를 높였다.

취학대상 아동에 대한 소재를 파악하고 입학 후 무단결석자를 집중 관리하는 부처별 아동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단결석 이틀이면 전화연락해서 출석독촉을 하고, 3일 이후부터는 가정방문이나 학부모 소환 면담, 7일이 넘으면 시도교육청 전담기구로 넘긴다. 년 1회 아동학대 방지 및 신고 의무자 교육을 전국학교(교원)를 대상으로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처간 협력체계를 통한 안전망도 만들었다. 보건복지부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연계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아동학대 조기발견 서비스 정책도 발표했다.

전국 학부모지원센터 97개소를 통해 학부모역량강화 교육과 아동학대 예방 교육 프로그램 운영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정책은 현장에서 시들고 말았다. 경기도 성남시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진짜 웃겨요. 당시 정부 시스템에 따르면 가정방문은 읍면동 공무원이 하게 돼 있어요. 이 공무원이 복지수요 조사도 하고 학대징후에 대한 판단도 하게 돼 있는데 …그 다음 과정은 말하기가 곤란하네요"

◆유치원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 교육 강화해야 = 자식을 때려 죽인 부모들의 평균 연령대는 34세로, 무직이거나 가정주부, 일용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반면, 피해아동 평균 나이는 채 5살이 안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이다. 2013년의 경우 가해자 2만2000여명 중 5000여명이 사회적 경제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사회 존속살해와 자식살해는 가정불화와 부부싸움이 50%를 차지한다. 특히 부부싸움으로 인한 아동학대는 5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예방 전문가들이 학부모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유치원 학부모에 대한 아동학대 근절 교육을 강화했다. 교육부는 "학부모의 자녀 양육에 대한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현장 밀착형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중앙연수와 관련 자료를 교육부 홈페이지에 탑재해 SNS를 통해 학부모 자료로 송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도교육청은 유아교육진흥원을 통해 체험형으로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단위유치원 역시 집합교육, 가정통신문, SNS를 활용한 학부모교육을 실시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체 학부모 중 아동학대를 의심할 만한 학부모들이 참석했는지, 연간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이 예방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아동학대 예방 교육은 주로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이 맡아 진행한다. 그나마 예방교육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교사를 넘어 학부모 곁으로 가지 못했다는 게 교사들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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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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