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관계설정, 그것이 문제로다

2022-08-01 11:00:51 게재
"위태로운 세계화 … 고민 깊어진 독일" 에서 이어집니다

유럽연합(EU)은 지정학적 행위자를 노린다. 세계화 이후 시대를 정의하는 세력이 되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국방장관을 지낸 EU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은 권력의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에 따르면 EU는 과거 수십년 스스로를 경제연합체로 인식했다. 독일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냉전적 사고에 갇힌 제국들이 여전히 영향력과 블록을 기준으로 사고하지만, EU는 스스로를 시장조성 민주주의 공동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경제제국인 EU는 초세계화를 향해 나아갔다. 자유무역과 탈규제시장, 이익 최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자유와 경제성장이 동전의 양면인 듯 보이는 한, 이 모델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새로운 자각이 싹텄다. 무제한적 시장은 새로운 의존성을 가져왔다. EU의 취약점은 많았다. 유럽 데이터의 90%는 미국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저장된다. 유럽 반도체시장 점유율은 10%에 불과하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 심각했다. 중국 원자재는 유럽의 풍력·태양광산업이나 전기차 확대에 필수적이다. 게다가 중국은 유럽에 매우 중요한 판매시장이다. 독일 자동차제조사 폭스바겐은 전체 매출의 1/3을 중국에서 올린다. 프랑스 루이비통 같은 유럽의 럭셔리 제조사들에게도 중국은 가장 중요한 성장시장이다.

EU의 많은 정치인들은 세계화가 추동한 일확천금 성향이 유럽의 의존성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덴마크의 EU 집행위원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유럽의 많은 기업들이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중국의 값싼 노동력,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만의 반도체에 의존한다"며 "우리는 순박하지 못했다. 우리는 탐욕스러웠다"고 말했다.

EU 내에서 '익숙한 세계화의 모델과 헤어져야 한다' '타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자성이 나온다. 하지만 고립을 피하면서도 독립성을 높일 방법이 있을까.

중국 우회하기 어려운 광물제련

이와 관련한 열띤 논쟁이 있다. 프랑스의 EU 내부시장 위원인 티에리 브르통은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을 다시 유럽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하다면 수십억유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보호주의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시장지향적인 성향의 베스타게르 위원은 자급자족이 아니라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전세계 다양한 국가들, 다양한 공급업체, 다양한 소비자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스페인 '유로배터리 미네랄스'는 이 나라 팜파 지역에서 니켈을 캐는 기업이다. 이는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에 없어서는 안될 물질이다. 이 기업 CEO 로베르토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현재까지 500만유로를 투자했다. 이 기업의 니켈 채굴량 목표는 16만2500톤이다. 달성한다면 현재 가치로 약 41억달러에 달한다.

팜파 지역의 사업은 시작일 뿐이다. 마르티네즈에 따르면 유럽 전지역에 배터리용 광물자원이 가득하다. 문제는 채산성이었다. 과거 유럽에서 광물을 캐내는 건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마르티네즈는 "유럽의 소비자와 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자체적으로 광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실성만 있으면 할증금을 낼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독일 폭스바겐 CEO 헤르베르트 디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폭스바겐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원자재 의존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폭스바겐은 독일 내 생산을 수주 동안 중단했다. 자동차 중앙신경시스템인 와이어링 하니스(배선뭉치)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에서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폭스바겐 위기대응팀이 가동되고 있다. 주요 원자재의 공급이 갑작스레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폭스바겐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코발트는 주로 콩고에서, 리튬은 호주와 칠레 중국에서 수입한다. 광물 자체의 공급과 달리 제련과 관련해선 중국을 우회하기 어렵다. 중국은 전세계 리튬광물의 58%를, 코발트광물의 2/3을 제련한다. 만약 중국이 독일에 공급을 끊거나 3배 가격을 부른다면 독일의 전기차 혁명, 자동차산업의 황금기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다각화를 외면한 데서 오는 리스크다. 비단 폭스바겐뿐 아니다. 독일 경제 전반에 해당된다.

폭스바겐은 유럽 6개 배터리공장에 수십억유로를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 전체 수요의 20%를 채우는 데 그친다. 나머지 80%는 글로벌 공급업체로부터 들여와야 한다.

핀란드와 스웨덴엔 니켈광산이 많다. 스페인과 호주 독일에도 리튬광산이 있다. 체코공화국은 망간광산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 내 광산채굴 프로젝트를 모두 가동한다면 유럽의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을까. 독일 지구과학·천연자원 연방연구소 산하 원자재국(DERA)의 페테르 부흐홀츠 국장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리튬의 경우 유럽 자체 생산으로 수요의 25% 이상을 공급할 수 없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호주 없이는 전체 수요를 댈 수 없다"고 말했다. 배터리에 쓰이는 다른 원자재도 상황은 비슷한다.

한때 혁신의 리더로 불렸던 폭스바겐조차 오랫동안 타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에게 의존했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인공지능은 대만과 이스라엘 캘리포니아 상하이에서 만들어진다. 디스 CEO는 "만약 유럽이 자동차와 관련한 데이터 주권을 잃는다면, 미국이나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에게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맡겨야 할 것"이라며 "인공지능이나 반도체와 같은 미래지향적 기술에서 독일 기업들은 너무 허약하다"며 "유럽 전체적으로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서구의 거리두기 심화

독일 스포츠용품 제조사 아디다스의 2분기 중국시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하락했다. 중국은 아디다스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3번째로 낮아졌다. 아디다스를 비롯해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최근 '궈차오'(國潮, 애국마케팅) 현상의 확산으로 부진을 겪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이 구매결정 기준으로 국가적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서구의 브랜드가 두팔 벌려 환영받던 날들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독일경제엔 우울한 소식이다. 독-중 무역액은 한해 2450억유로에 달한다. 중국은 이론의 여지없이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다. 게다가 양국 상호간 반감이 점차 커진다. 외국노동자들은 속속 중국을 떠나고 있다. 독일 기업들은 중국에서 일하려는 경영자를 찾는 데 고전하고 있다. EU와 미국 독일 프랑스의 상공회의소가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 3/4 이상이 "중국 투자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표면상 외국인과 기업들의 엑소더스(탈출)는 중국의 엄격한 제로코로나 정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팬데믹은 촉매제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구 기업과 노동자들은 중국 현지에서 이전과 다른 기운을 느끼고 있다. 중국이 전세계와 거리를 두려한다는 느낌이다. 마찬가지로 시진핑 주석의 지도 아래 중국인들 역시 세계와 불화감을 느낀다. 외부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범람하는 곳이고, 중국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이 지배하는 곳으로 인식된다. 중국의 역사적 성취를 존중하지 않으며 점차 적대적으로 중국을 대한다고 본다.

중국을 보며 '자유무역이 민주주의로 인도할 것'이라는 서구의 희망은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그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규제 중심의 경제적 사고를 하는 독일은 중국의 방식과 나름 궁합이 잘 맞았다. 베를린 소재 중국연구 싱크탱크인 '메릭스'의 막스 젠글라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년 동안의 세계화는 유통기한을 가진 안락한 꿈이었다. 중국은 그 기간 동안 세계화의 심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여전히 중국을 우회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차려야 한다"며 "이제는 베트남이나 필리핀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시진핑의 경제정책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시 주석은 2020년 미중 무역전쟁 대응법으로 '쌍순환전략'을 선언했다. 외적으로 수출·개혁 개방을 지속하면서 대내적으로는 내수를 키우고 활성화시켜 내순환(국내시장)과 외순환(국제시장)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들자는 전략을 말한다. 핵심 의미는 중국이 더 이상 외국에 의존해선 안된다는 것, 동시에 중국에 대한 외국의 의존도는 계속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미래에 불길한 징조다. 중국과 서구의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고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세적 입장을 강화한다면 서구로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러시아와 달리 중국에 제재를 가하는 건 서구 스스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경제통합만으로 세계사의 방향을 유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독일정부는 현재 새로운 중국전략을 수립중이다. 슈피겔은 "여러 소식통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독일은 중국을 체제경쟁국으로 공식 규정하는 방안을 고민중"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