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금지법 판례·산재 분석

직장갑질 방치한 회사 처벌 강화

2022-08-09 10:53:53 게재

직장갑질119, 법원 판례 18건 분석 … 사용자 책임 확대, 손해배상액 증가

2019년 7월 16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이른바 '직장내 괴롭힘 금지제도'가 도입된 지 3년이 흘렀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분기별로 진행하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갑질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갑질을 경험했다는 직장인의 비율은 2019년 6월 44.5%에서 올해 6월 29.6%로 크게 줄었다.
이러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의 의식 수준 변화는 법원 판결에도 반영돼 가해자와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손배배상액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사용자의 책임도 확대돼 사용자에게 첫 징역형을 확정한 대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하지만 직장내 괴롭힘 심각성에 대해서는 2019년 6월 38.2%에서 2022년 6월 39.5%로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2020~2021년에만 직장내 괴롭힘 등으로 극단적 선택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만 201명에 달했다.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 행위 규탄 |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5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내 성희롱과 차별 행위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A씨는 회사 관리자인 B씨로부터 수시로 욕설과 폭언을 듣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이러한 사실을 사업주에게 신고했지만 오히려 무단결근으로 해고했다. 또 사업주는 A씨의 신고내용을 녹음해 B씨가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도록 도왔다. 게다가 A씨와 부당해고로 다투게 되자 A씨를 전보 조치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7월 대법원은 사업주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법기관의 가해자와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 강해지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의 의식 수준 변화가 법원 판결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직장내 괴롭힘 판례 및 사례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19년 7월 16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이른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축적된 민사(13건)·형사(1건)·행정소송(4건) 판례 18개를 분석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르면 사용자는 괴롭힘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없이 객관적 조사할 의무가 있으며, 조사 과정과 괴롭힘 사실 확인 후에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징계를 해야 한다.

◆손해배상 300만원에서 1000만원대로 = 법원은 직장내 괴롭힘을 방치한 사용자에 대해서 손해배상 책임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상급자 C씨에게 수차례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 D씨에게 C씨에 대한 형사고소 취하를 권유한 E씨와 함께 포항시에 1000만원을 공동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피해자 E씨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치한 포항시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경리직원 F씨는 2년 동안 회사 임원 G이사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렸다. 사업주는 이를 알고 주의를 줬으나 2021년 1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사업주가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위자료 1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 행위를 직접 한 경우뿐 아니라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방지하지 못한 경우에도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시했다.

현행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친인척 포함)가 가해자인 경우가 아니면 처벌조항이 없다. 가해자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을 물으려면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직장내 괴롭힘 관련 사건에서 손해배상액이 높아지고 있다. 손해배상 금액은 대체로 300만원 안팎이었는데 최근 1000만원의 금액을 위자료로 인정한 판례들이 나오고 있다. 보고서는 "직장내 괴롭힘을 한다면 경징계 수준을 넘어 고액의 손해배상을 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사용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도 있다.

피해자 H씨는 회사 직원 I씨로부터 "죽여 버린다" "X신아 꺼져라" 등 협박과 모욕을 받았다. H씨는 회사를 상대로 I씨에 대한 불법행위를 방조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020년 6월 서울중앙지법은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사용자가 직장 내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 상황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따른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문제가 된 행위가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려면 사용자의 제제나 조치가 가능한 업무 관련성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용자 첫 징역형, 피해자 주관적 의사 고려해야 = 앞서 대법원 판결은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서 첫 형사책임을 인정한 사례다. 사용자는 전보된 근무지가 근무 강도나 여건면에서 더 낫다면서 불리한 처우라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사후조치시 '피해자의 주관적 의사'를 마땅히 고려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직장내 괴롭힘 법적 분쟁 중 대표적인 것이 가해자가 징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하는 경우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J씨는 사내 여직원 3명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고 회사에 입점한 카페 여직원 2명에게도 신체적 접촉도 했다. 회사는 인사위원회에서 권고해직을 의결했다. J씨는 이를 거부했고 회사는 재심의를 거쳐 징계해고했다. J씨는 징계절차에 문제가 있다면서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J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급자여도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해자 K씨는 과장인 피해자 L씨의 하급자였지만 사내 회식에서 1·2차 신체적 성희롱을 했다. 또한 선임과장이 M씨와 함께 사내 메신저로 L씨에 대한 욕설을 하고 말을 섞지 않거나 둘이서만 대화하는 등 L씨를 따돌렸다.

같은해 9월 서울행정법원은 하급자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직장내 괴롭힘에서 '지위 및 관계상의 우위'를 형식적인 직위 명칭이 아니라 실질적 관계에 따라 판단한 사례다.

◆고용부의 관리감독도 중요 = 정소연 변호사(직장갑질119)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형사처벌 판례도 나오는 등 법 개정 이후 개선 흐름이 뚜렷하다"며 "직장내 괴롭힘이 단순히 사람 사이 갈등이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불법행위고, 사용자는 이를 예방하고 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의 유의미한 판례가 쌓이는 만큼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직장갑질119는 "일반 직장인들에게 소송은 큰 부담이기 때문에 고용부의 적극적인 조치의무 관리·감독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또 다른 행위자를 용인하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방치하는 사용자가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직장갑질 극단적 선택 산재승인 201명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한남진 기자 기사 더보기